유럽 여행기 2 / 스위스 루체른 편
십여년 전 유럽 여행이 처음이었던 아내와 유럽의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특히 스위스의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었다. 다음에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스위스만을 위한 여행을 하자고 다짐하고 수년 후 아내와 일주일짜리 스위스 패스를 발권하여 빙하 특급으로 스위스 구석 구석을 누볐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3천5백미터 이상의 만년설을 품은 높은 봉우리를 자랑하는 융푸라우도 파라마운틴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삼각뿔 모양의 마터호른 산도 아닌 스위스에서는 2천2백 미터의 비교적 낮은 산인 필라투스였다.
루체른 중앙역에서 인터라켄 방향으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유람선을 타고 호수로 오게되면 30여분 거리에 위치한 멀리서 바라보면 평범해 보이는 산 이었다.
수년전 아내와 필라투스산에 올랐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기가 어렵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고 산정상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아 괜히 십여만원에 이르는 비싼 등산 열차 비용만 날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어 도박하는 심정으로 등산 열차표를 발권 했다. 100년도 더 되었다는 빨간색이 인상적인 등산 열차를 타고 오르는 30여분에 이르는 여정이 그야말로 변화 무쌍의 여정이었다.
빼곡한 원시 침엽수림의 숲과 암석을 뚫어 만든 터널들을 통과하여 오르내리는 등산열차가 교차하는 중간지점에 다다르니 아래로는 아스라히 루체른 호수가 펼쳐지고 위로는 구름이 자욱해 정상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구름속을 뚫고 십여분을 더 올라가니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산 중턱 까지 보이던 원시 숲은 사라지고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초원에 펼쳐졌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온통 암벽과 돌덩이만 가득한 풍경으로 변하고 60도 이상으로 기울어진 아찔한 경사면을 타고 열차가 오르며 정상에 도착하니 그곳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2,000 미터 이상의 직벽 절벽 아래로 보이는 루체른 시내와 호수가 현기증을 불러 일으켰다. 발밑 구름의 바다 사이로 만년설을 품은 알프스의 준봉들이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졌다.
30여분만의 드라마틱한 반전의 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번에는 날씨가 맑아 그때와 같은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지만 차창밖으로 보이는 변화 무쌍한 풍광은 여전히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산의 낭떠러지를 따라 만들어 놓은 좁은 길을 걷는 동안 동행한 한 친구가 갑자기 산등성이로 뛰어 올라가 절벽 끝자락에 기마 자세로 몸을 걸치고 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오그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를 처형한 본디오 빌라도의 악령이 붉은 용으로 변신하여 살고 있는 명명 되어진 빌라도의 다른 발음 필라투스.
동굴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걷고 있노라면 산을 휘몰아 치는 바람소리가 악령의 화신인 빌라도의 붉은 용이 산을 휘감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등산열차로 산을 내려와 10여분을 달려 루체른 중앙역 앞에 있는 선착창에서 1시간여를 호수를 돌아보는 요트에 올랐다.
루체른 호수는 품위 있는 도심의 건물과 어울려 기품이 있는게 인터라켄의 호수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에어랄드 빛 물속에 당장이라도 물속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남쪽 저 멀리로 방금 전 올랐던 필라투스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보였다.
요트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보낸 한 시간여의 신선 놀음과 같은 시간은 추억이 되어 다음에 또 자석과 같은 끌어당김의 유혹을 보낼 것이다.
여장을 풀고 선상 테라스에 앉아 호수가에 반짝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그 맛과 향이 지금도 머리속에 각인되어 잊혀지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