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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09. 2021

Since 1937, 80여 년 업력의 해장국 노포

서울 종로 청진동 청진옥

2019년 소비 트렌드 중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뉴트로>이다. 매스미디어는 영리하게 트렌드를 주도하기도 혹은 반영하기도 한다.

<음식>이란 키워드는 늘 방송의 주요 단골 소재이기도 했지만, <찾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식당>이 본격적으로 방송에 등장한 시기는 2003년경 SBS <결정! 맛대맛>이라는 프로그램이었으며, 수요미식회와 삼대천왕이 그 바통을 물려받아 한창 사랑을 받았었더랬다.


최근 방송을 보면 “허영만의 백반 기행”, “노포래퍼”, “다큐멘터리 3일” 등 <노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청춘식객인 2030 세대의 <뉴트로 소비>가 이젠 당연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종로 피맛골 재개발 전 청진옥 가게 전경

종로 청진동에서 1937년 개업하여 82년간 도심 직장인의 해장을 책임졌던 <청진옥>에 머물렀던 시간 동안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던 손님들은 나이 지긋한 신사들이 아니라 젊은 연인과 친구들이 월등히 많았다.

성업 중인 청진옥의 현재 모습

난 이 식당의 변화를 직접 체험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아직 사원 시절이었던 2000년대 중반 피맛골의 청진옥 단층 건물에서 진짜 서민식당 느낌이 물씬했던 당시에도 해장국을 먹었었고, 종로 개발시대의 첫 발자국이었던 르메이에르 빌딩에 청진옥이 입주했었던 내가 대리 과장 시절에도 이 집의 음식을 먹었고, 르메이에르 빌딩 임대 계약의 만료로 건물 한 채를 식당으로 사용하는 현재도 경험했고..


통상 오래된 식당의 솥 위치가 바뀌면 음식 맛도 변한다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십수 년간 띄엄띄엄 이 식당을 방문하며 느낀 건 오히려 음식 맛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레트로 인테리어를 하긴 했어도!

과거 허름한 외관, 왁자지껄한 분위기,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잔으로 애환을 달래는 이런 아우라는 이제 없을지라도!

이젠 서민이 부담 없이 먹기엔 애매한 1만 원대로 가격이 올랐을지라도!

오히려 선지와 양이 대식가인 나조차도 많다 느껴질 만큼 푸짐해지고, 국물은 조미료 맛 대신 중후한 중년 여인의 미소처럼 부드럽고 깊어졌다.


통상 해장이라 하면 숙취로 절어버린 육신에 얼큰하고 자극적인 국물로 위장을 마비시키는 개념인데, 이 집의 해장국은 된장 베이스의 맑은 국물이다. 냄새를 잡기 어려운 부속물로 이 정도 맑은 국물을 낸다는 것은 <재료의 신선함>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여기 해장국은 3번에 걸쳐 맛을 달리할 수 있다. 우선 나온 그대로 국물을 충분히 떠먹은 뒤 좀 더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파를 다량 집어넣고 반 정도를 먹는다. 그리고 다시 반이 남았을 때 잘 숙성된 빨간 다진 양념을 반수저 가량 넣으면 순하게 생긴 시골 처자가 스모키 화장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듯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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