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던 이유

10년 장롱면허 탈출기-1

by 오호라

운전면허를 딴 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스물두 살 때였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3단계 필기, 기능, 도로주행 중 기능시험이 최고로 쉬웠다던 2012년 겨울이었다. 얼마나 쉬웠냐면 정차된 상태에서 좌우 깜빡이 조작하고 와이퍼 켰다 끄고, 브레이크에서 발 떼고 직진 조금 한 뒤에 비상벨이 울리면 비상등 켜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해서 직진 좀 더 하면 끝이었다. 기능시험이 1분 만에 끝날 정도로 간단했고, 그 뒤에 도로 주행을 시켰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브레이크와 엑셀 위치만 알려주고 도로로 나간다던 당시 강사의 말에 믿기 힘들정도로 당황스러웠던 그 감정. ‘이대로 나가면 죽을 것 같은데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선생님 말씀을 꽤 잘 듣는 애로 컸던 나는 그래도 대범하게 엑셀도 잘 밟고 차선 변경도 곧잘 하는 편이었다. 어떤 이들이 도로주행할 때 시속 30킬로 이상 밟지 못하더라는 썰을 들으며, ‘난 그 정도는 아니지’ 하며 우쭐해할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면허를 딸 당시에는 필기, 기능, 도로주행 3단계를 모두 불합격 없이 한 번에 통과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10년 동안 대중교통이 아주 촘촘하게 잘 되어있는 반면 주차난과 교통체증이 심각한 서울에 살면서, 나는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 사이 운전하는 법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브레이크가 엑셀의 왼쪽에 있는 건지 오른쪽에 있는 건지 조차 헷갈릴 정도로. 그러다 운전대를 다시 잡게 된 건, 서울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 갈 결심을 하면서부터다. 또한 결혼을 한 뒤, 명절에 서울에서 창원으로, 창원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KTX와 고속버스, 택시를 오가며 몹시도 피곤해진 나머지 자가용이 절실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전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웨딩시장이 여러모로 차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걸 느꼈다. 웨딩 스냅을 찍으려고 해도 자가용이 있어야 했고, 드레스 투어를 다닐 때도 필요했으며, 요즘 같은 코시국에 국내 신혼여행을 다닐 때에도 필요했고, 가성비 혼수를 구입하기 위해 많이들 가는 이케아를 갈 때에도 필요했다. 그렇게 자가용이 필요할 때마다 나와 남편은 우리 대신 운전을 해줄 수 있고 상대적으로 편히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혼여행까지 아빠나 시누이랑 같이 갈 수는 없으니 그때는 택시를 이용했다. 그렇게 여러모로 도와달라 할 수 없지만 자가용이 필요한 상황이 자꾸만 발생하는 건 드디어 내 면허를 장롱에서 꺼낼 시점이라는 의미로 여겨졌다.


더욱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건, 나는 어쨌든 면허가 있어서 연수만 받으면 바로 운전을 할 수 있고 남편은 면허가 없어서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면허를 따야 하는 상황인데, 내가 운전을 못한다고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신랑이 운전 못해? 면허 없어?’라고들 묻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는 신랑이 면허가 없고 내가 면허가 있다고 얘기를 해도 ‘신랑이 빨리 면허 따야겠네’라고 귀결되는 이상한 결론. 아니 여러분, 나는 장롱에서 면허를 꺼내기만 하면 되고 신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건데요? 여성운전자가 얼마나 많은 시대인데 대체 왜 그러시는 건지들 알 수 없는 그들의 이상한 결론이 너무도 기분 나빠서 나는 반드시, 기필코, 꼭 운전대를 다시 잡아야 한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운전하는 것만으로 페미니즘이 된다고? 그렇다면 테이킷! 이런 마음도 약간 있었고.


위와 같은 연유로 나는 물심양면을 동원하여 아주 열심히 운전을 배웠다. 일단 돈을 써서 전문 운전 강사에게 연수를 받았다. 10시간에 28만 원으로 일대일 강습을 받았다. 강사 기본 인건비에 안전장치가 설치된 학원 차를 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와주시는 데다가 주차비나 기름값 같은 건 내가 별도로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감안하면 꽤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잘 가르쳐주시는 50대 여성 강사분을 아는 분께 추천받은 덕분에 ‘밀폐된 공간에서 모르는 아저씨와 일대일로 대면해야 하는 큰 모험’없이 서울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10시간 동안 안전하게 잘 배울 수 있었다. 사실 10시간은 운전에 능숙해지기엔 정말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연수가 필요했는데, 이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설 연휴기간 동안 친정에서는 아버지에게 대략 10시간, 시가에 내려가서 시아버지께도 대략 10시간 ‘훈련’을 받았다. 이때 청주에서 창원까지 가는 약 3시간 고속도로 코스, 청주에서 제천까지 가는 국도와 시골길 코스, 1시간 야간 코스를 경험했으며, 창원에서는 방지턱이 많은 시골길 코스와 시속 100킬로 이상 밟을 수 있는 고속도로 코스를 경험한 뒤, 공터에서 후면 주차와 코너링 연습을 2시간 가량했다.


그 후에 나는 꽤 운전에 자신감을 얻어서 서울에 올라온 뒤에 혼자 쏘카를 빌려서 운전을 해볼까 생각했으나, 가족들이 아직은 위험하다고 하는 바람에 그 때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고 이번엔 사촌오빠에게 도움을 구했다. 설 연휴 이후 한 주에 한 번 주기로 총 세 번에 걸쳐 추가적인 연수를 받았다. 약 90분가량 운전하고 쉬고 90분 걸려 돌아와서 주차 연습을 하는 방식으로 사당에서 과천도 다녀오고, 일산에서 파주로도, 강화도로도 다녀왔다. 일부러 여러가지 차를 타보기도 했다. 준중형 차를 뽑을 예정이어서 K3와 아반떼를, 그리고 귀여운 경형SUV 캐스퍼까지. 여기에 처음에 돈주고 받은 연수 때 몰아본 쏘나타와 양가 아버님들께 연수받을 때 몰아본 쏘렌토, 그랜져, K7까지 합하면 총 7종의 차를 몰아본 셈이다. 내비게이션을 보는 게 많이 익숙해졌고 코너링을 돌며 핸들을 풀었다 감았다 하는 감각도 꽤 손에 익었다. 차에 따라 핸들의 무게감과 엑셀 또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의 감각이 어떻게 다른지 대략 안다.


사촌오빠에게 두번째, 세번째 수업을 받을 때는 그저 신호에 따라 출발하고 멈추고 앞차를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보다 테크니컬 한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 이를 테면 브레이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속력을 줄이는 용도로 아주 멀리서부터 천천히 나눠서 밟는 것(밟는다기 보다는 민다는 생각으로), 차가 멈출 때에 ‘턱’ 선다는 느낌이 아예 없도록, 액셀을 밟을 때는 지긋이, RPM이 3천이 넘지 않도록, 엑셀에 발을 올렸다 뗐다 하며 평균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주행하는 방식을 배웠다. 구간 단속구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선을 바꿀 때는 뒤차를 보내고 들어갈 것인지 추월해서 들어갈 것인지에 따라 어떻게 판단하고 들어갈 것인지, 네비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같은 것들도. 주차도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차 대는 데에 큰 무리는 없겠다 싶은 정도는 되었다. 세번째 마지막에 딱 한번의 수정을 거쳐 후면주차를 똑바르게 하고 난 뒤, 나는 솔직히 사촌오빠에게 ‘하산하겠습니다’라고 외칠 뻔했다-는 좀 과한가.


어쨌든 정말 하산을 할 때가 되었다. 내일모레면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한다. 늘 조수석에 운전을 코칭해주는 이가 함께 했었지만 이제는 정말 ‘독립’이다. 이제 조수석에는 운전에 대해서는 나보다 모르고 내가 목숨을 잘 챙겨줘야 하는 남편이 탄다. 꽤나 긴장되지만 사고 없이 잘 해내리라, 나는 스스로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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