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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Oct 29. 2015

엄마와 밥을 먹었다

미지근한 안녕


엄마와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지가 참 오래되었다. 나는 늘 집에 있는데 엄마가 바빠서 그렇다.



혼자 살 때보다 집에 있는 동안 더 자주 혼자 먹었다. 아침에 사과는 침대에서, 점심은 대개 거실 테이블에서, 저녁 바나나 주스는 내 방 책상에서. 집에 콕  틀어박혀하는 일이라곤 끼니를 챙기는  것뿐이니 가만히 어도 알아서 잘 챙겨먹었을 텐데, 엄마는 늘 열 시쯤엔 전화를 걸어와 숙제처럼 먹을 것을 챙겼다.


'냉장고에 삼치 있어. 오래 두면 안되니까 오늘 구워 먹어.'

'식탁 위에 포도 있는데 왜 안 먹니? 빨리 먹어.'

'양배추 즙 짜 놨다. 몸에 좋은 거니까 하나씩 마셔.'

'도토리 묵 해놨는데 먹었어? 먹고 뚜껑 덮어놔.'

'김치 냉장고에 무김치 익었더라. 꺼내먹어.'


엄마의 메뉴는 끝도 없었다.


'간장에 파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서 양념장 만들어 먹어.'

'너무 강한 불 말고 중 불에서 10분, 약불에서 5분. 기름 튀니까 신문지 덮고.'


하는 등의 자잘한 팁도 뒤를 이었다.


어어-.


짧은 대답을 하고 돌아서서 나는 착한 학생처럼 엄마가 내준 숙제를 해치웠다.





Peru, Huaraz (2014)





엄마는 요리를 잘했다. 초등학교 소풍 날이면 엄마가 꼭 선생님 도시락을 하나 더 챙겨주었다. 새벽부터 김을 만 것은 똑같을 텐데, 내 도시락이 제일 먼저 바닥을 보였다. 아쉬운 마음에 나무 젓가락을 쪽쪽- 핥아먹고 나선 늘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 김밥이 제일 맛있지?


엄마가 싼 김밥으로 내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 엄마 밑에 자랐는데도 내 오감 중 가장 둔한 것이 미각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원래도 그랬는데 나가서 사는 동안 먹는 것에 더욱 무덤 해졌다. 빠듯한 생활비에서 가장 줄이기 쉬운 것이 식비였기 때문일 거다. 그 밖에도 혼자 뭔가를 꼭꼭 씹는 동안 서러운 적이 많았던 탓도 있다. 잠깐 하던 일을 그만두고서는 허투루 보내는 시간에도 꼬박꼬박 찾아오는 허기가 괜히 미워서 더러 굶기도 했었다. 뭔가를 먹는 일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서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져 있는 끼니가 참 귀찮고 싫었다.  보잘것없는 인간의 하루에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허기가 부당하다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Peru, Cuzco (2014)


 


당분간 집을 비운다니 엄마는 난데없이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기에 내가 고개를 저었고,

뭐가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 한참 고민하다 '잔치국수'라 답했더니 이번엔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은 게 고작 그런 거냐며.





어쨌든 우리는 국수집엘 갔다. 멸치로 우린 맑은 국물에 호박 고명과 양념장이 단정하게 올라간 뜨뜻미지근한 국수를 앞에 두고  한동안은 달그락달그락 젓가락만 요란했다.


맑은 국물을 뜨면서 엄마는 걱정도 같이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위험한 데 가지 말고.


후루룩 면을 말아 올리면서 미안한 마음을 억지로 삼켰다.

그런데 안 가는 거 알잖아.


오랜만에 마주 앉은 식탁은 낯설고, 어색했다.





국물이 차게 식었을 때쯤, 엄마가 물었다.


이게 마지막이니?


삼키던 국수가 컥- 목에 걸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눈물을 닦으며 뒤늦게 고개를 저었는데 엄마가 봤는지는 모르겠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맑은 국물의 뜨끈한 국수는 올해 우리의 마지막 식사였다.


엄마가 기대하는 마지막이라는 건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더 멀리, 더 오래 떠나게 될 거다.


고마움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늘 앞서서 터진 입은 말이 없지만

마주 앉아 뜨고 삼켜낸 국수와 걱정과 못내 죄스러운 마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자못 무거웠던 우리의 식사가

뜨겁지 않지만 따뜻한 국수의 온도로

적당히 가벼운 국수의 무게로

엄마의 기억 속에 남아줬으면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물었다.

그래서 언제 돌아오는데?


티켓 싼 날 와야지, 뭐.


서슴없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하시는 말씀.

싸구려 인생이다, 참.










아니야, 엄마.

싸구려 숙소에 자고, 싸구려 음식을 먹고, 싸구려 비행기를 타지만

내 인생은 싸구려가 아니야.



당당하게 말하고서 흠칫 놀랐다. 싸구려를 입고, 먹고, 자지만 내 꿈은 싸구려가 아니다. 내 인생은 싸구려가 아니다. 불안해했지만 알고 있었던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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