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개성의 탄생』을 읽고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지만 또 이상할 정도로 반향이 없는 책 『양육 가설』(Nurture Assumption)의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또 한 권의 책이다. 이 책에 『양육 가설』에 대한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으므로, 『양육 가설』의 방대한 양과 두께로 망설이는 분들에게는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그녀의 짧지만 다사다난한 인생 스토리와, 학계에서의 논쟁에 대한 (깨끗하지만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통계를 심리학에서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아주 깔끔한 설명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인생 스토리부터 들어 보자. 그녀는 심리학 석사 졸업 후에 박사 진급을 포기하고 교과서를 집필하는 소일거리를 하다가, 쌓여진 데이터를 토대로 발달심리학의 핵심 가설에 큰 의문을 제기하는 메타분석 논문을 「Psychological Science」라는 저널에 게재한다. 논문 리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석사 졸업생이 지도교수 없이 유명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게재 후에도 그 충격에 비해 학계의 반응은 그저 그랬고, 실제로 그녀가 유명해지게 된 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 (바로 그 『양육 가설』)을 출판하고 난 후였다. 그 뒤로 미국의 조용한 시골에서 조용히 요양하며 글을 쓰던 병약한 아줌마는, 발달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의 유명 연구자들의 뚝배기를 깨부시고 다니는 여전사로 거듭났다.
말 해놓고 미안하지만, 여전사 운운은 내가 한 표현이고 실제로 ‘뚝배기를 깨부실 만큼’ 그녀가 논쟁의 우위에 있었는지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가 유명한 논문의 저자들의 참고자료의 허위사실을 밝혀 내고 끈질기게 그들의 실체 없는 실험을 계속해서 추궁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책에 나온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의 책을 참고삼아 말하자면 그녀에게 당한 심리학계의 유명한 학자들이 꽤 다수이고, 그것도 그들의 연구의 논리적 오류라던가 실험의 잘못된 편향이라던가 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밝혀 낸 것은 없던 실험을 만들어 내거나, 없는 사실을 참고자료를 써 넣거나 하는 윤리적이지 못한 과정들이었다. (그 중에는 『타고난 반항아』의 저자 프랭크 설로웨이도 있었다. 나는 해리스의 이 모험담을 읽고 난 후 그 두꺼운 설로웨이의 책을 중고서점에 팔아 버렸다.)
이러한 얘기들은 사실 부수적이고 일화적인 곁다리일 뿐이다. 이제부터 책의 정수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 책은 왜 ‘유전’과 ‘환경’이 모두 같은 쌍둥이의 성격이 다른가에 대해서 밝히는 책이다. 물론,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이 다르다면 유전적으로 50%의 차이가 있는 형제자매 — 이란성 쌍둥이 포함 — 는 그보다 더 다르다. 그러므로 적절히 제기될 진짜 의문점은, 형제자매를 다르게 하는, 유전이나 환경이 아닌, 제 3의 요인이 있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요인이 유전과 환경만 있는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환경에 의해 발현되거나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라는 설계도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표현형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눈색깔) 이것은 순수한 유전의 요인이다. 순수한 환경 요인이란, 유전자가 같을 때 다른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형 효과이다. (예를 들자면, 다른 문화권으로 입양된 쌍둥이의 모국어) 사실 환경의 요인이라 해서 유전자가 상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설계도 없이 인간은 만들어지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순수한 환경의 효과’란 다분히 통계학적인 뜻이다. ‘차이’에 대한 얘기라는 소리다. 같은 유전자에 다른 환경이므로, 통계적인 차이가 난다. 인간은 이 둘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 둘의 영향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다시 한 번, 이 둘 말고 다른 요인이 있는가?
해리스에 따르면, 있다.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 ‘가족 내 환경 차이’, 그리고 ‘유전과 환경의 상관관계’이다. 여기서부터는 훨씬 통계학스러운 이야기로 빠지는데, 인간을 통계와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사람은 꽤 재미있는 파트가 될 것이고, ‘통계는 거짓말’ 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책을 덮고 치유의 인문학 서적이나 보며 될 것이다. 상호작용과 상관관계란 워낙에 통계학에서 정의된 뜻이라, 일상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될 것이다. 뭐 어쨌든간에, 결론은 둘 다 아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내 환경 차이인데, 여기서도 우리가 생각했던 통속심리학(Folk psychology) 스러운 믿음을 여지없이 박살내 버리는 해리스의 논리가 드러난다. 가족의 출생순서 (형-아우, 누나-동생)은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것은 쌍둥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고? 행동유전학 데이터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프랭크 설로웨이의 이론에 뚝배기가 깨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므로 즐겁게 읽어 보자.
그럼 범인은 어디에 있는가? 환경과 유전, 그리고 이 둘의 통계학적 배리에이션은 모두 살펴 보았지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으로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여기다. (이론은 흠잡을 바 없다. 다만 책의 재미에 있어서 그렇다.) 우리는 전체집합이 유전과 환경, 그리고 그 둘의 배리에이션 뿐인줄 알았다. 해리스는 범인을 여기서 찾아내지 않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한다.
해리스의 새로운 체계는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이다. 그리고 이 셋의 상호작용, 특히 지위 체계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일란성 쌍둥이를 포함한) 형제자매의 성격이 조금 달라진다. 관계 체계란 인간 한명 한명을 식별(Identification)하고 우호적 관계를 정리하는 진화적 체계, 즉 뇌의 모듈을 뜻한다. 사회화 체계는 개체를 뭉뚱그려서 사회에 소속시키고, 그 사회 자체를 범주화(categorization)하는 진화적 체계, 즉 뇌의 모듈을 뜻한다. 지위 체계는 관계 체계에 의해 식별된 개체와 나와의 관계를 따져보아 손익을 계산하고 배타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경쟁자를 앞지르려는 진화적 체계(즉 뇌의 모듈)을 뜻한다.
결론은 이렇다. 쌍둥이를 다르게 만드는 범인은 이 체계들 셋이다. 관계 체계는 쌍둥이 둘 다를 아는 사람들이 쌍둥이의 개개인을 식별하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들며, 심지어 관계 내에서도 각기 다른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2학년 3반이면서 데스메탈을 즐겨 듣는 상철이의 쌍둥이 형제 구철이, 2학년 9반이면서 하드코어를 즐겨 듣는 구철이의 쌍둥이 형제 상철이) 쌍둥이 개개의 유일무이성은 칼날처럼 뾰족하기 때문에 가끔 상철이가 구철이로 착각되는 경우는 있어도 가끔 상철이가 구철이‘인’ 경우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구철이가 열받는 짓을 한다고 상철이를 패진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패더라도 “구철이 때문에 대신 네가 맞았다”는 메시지 정도는 보낼 것이다.) 지위 체계는 이를 확고하게 해 준다. 나와 상철이의 지위 관계는 구철이의 지위 관계와 구분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은 사회화 체계 내에 있다.
자, 이제 책에서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결론을 내 보자. 그렇다면, 이 세 체계는 본능인가, 환경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분명 세 체계에 대한 이론은 진화심리학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다. 사회화 체계가 아예 없는 아이도 없고, 관계 체계를 양육을 통해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교육을 통해 지위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므로 진화적으로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쌍둥이를 구분하는 또래 집단 사회 내의 관계 정립과 지위 싸움은 분명 환경의 영향이다. (양육 환경은 아니다. 해리스의 이론에 따르면 양육보다는 또래 집단 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다.) 그러나 쌍둥이의 경우 같은 유전자에서 다른 표현형을 발현하기 때문에, 쌍둥이의 성격을 다르게 하는 것은 본능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아닌 그냥 또래 집단 환경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한다.
그렇다면 왜 해리스는 초반에 환경을 범인이 아니라고 했는가? 책을 재미있게 쓰기 위해 무리수를 쓴 것인지도 모르고, 세 체계의 영향이 본능도 환경도 아닌, 제 3의 영향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해리스와 내가 합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점은 해리스가 책의 초반에 잠시 언급했던 ‘임의성’이다. 임의성이란, 측정할 수 없는 환경의 요인에 의해 같은 유전자가 다르게 발현하는 효과다.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측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새 체계에 대해 가설을 세웠으므로, 이제 실험을 통해 기존에 측정하지 못했던 임의성에 대한 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책의 말미에 해리스는 “새로운 이론을 창안한 사람과 이를 테스트하는 사람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역시 편향을 컨트롤할 줄 아는 심리학자의 자세다. 물론 학계를 벗어난 나도 테스트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된다. 학계에서 좋은 연구자들이 훌륭한 실험을 설계하여 열심히 테스트하고 있길 빈다.
170911 / 수정 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