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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대한 공간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어이, 김씨!

헛소리 말고 이거나 좀 날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이 책은 누구나 인정하는 교양과학서의 걸작이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이 책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 진행자로, 우주 개발의 황금기에 NASA의 자문으로 활동했던 과학자로, 소설 『콘택트』와 그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원 제작자로, 또 무엇보다도 회의주의에 입각해 인류가 무엇을 믿고 또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 지를 설파한 지식인으로서 전설적인 이름을 떨쳤다. 그는 또 다른 전설적인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비슷한 회의주의자이면서도 또 그와는 다른 낭만주의적인 사람으로 유명했었는데, 왜냐하면 ‘이 무한한 우주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인간 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다’라는 영화 『콘택트』의 명대사처럼 우주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또 그 생각을 여러 저작을 통해 밝혔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 개정판

과학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에 대해 매우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인데,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천문학과 출신의 친구들이 많은데, 이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과학을 하는 사람들인 주제에 정말로 낭만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들의 별과 우주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어릴 적 낭만의 우주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켜 준다. 그렇다. 우주, 그것은 정말로 낭만적인 것이다. 왜 우리는 잊고 살았을까? 아름다운 밤하늘, 끝도 없이 거대하고 아득한 우주 공간, 외계 행성의 탐험과 그 모험에 대한 이야기, 로켓과 우주선!


그리고 외계인. 칼 세이건의 외계 생명체와 지적 외계 생명체의 탐사의 당위성은 책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이다. 세이건이 활동했던 7~80년대, 그리고 90년대까지도 사람들의 외계 생명체에 대한 궁금증(정말 어딘가에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까? 인류는 그들과 언젠가 접촉할 수 있을까? 등)은 큰 화제거리였고 실제로 정당한 과학 탐사의 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와 2000년대는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계속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우주가 실제로 투자하는 비용에 대해 실질적으로 얻는 소득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낭만의 관점에서라면 소득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투자되어야 하는 일이 바로 우주 탐사였으나, 천문학의 대주주인 미국의 관심은 서서히 우주같은 소년과학적 주제에서 멀어져 갔다. 현재 많은 미국 소년과 소녀들이 IT, DNA, 금융 같은 주제로 돌아섰는데 그 이유는 실제로 이 주제들은 천문학보다는 좀 더 실용적이고 무엇이든간에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IT나 금융 같은 주제는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보다 덜 세속적인 생물학 같은 주제라도 적어도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줄 수는 있었다. 천문학은 정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먹는 주제에 실용적인 무엇인가는 ‘제로’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첨단 대량살상무기에 쓰는 돈보다 적다고 천문학에 투자해 달라고 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고등학생 시절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문학자의 꿈을 꾸었던 ‘낭만파’ 과학도들은 졸업하고 먹고살 길이 없어서 시간강사를 전전하던가 아니면 전공과 무관한 금융 회사 같은 곳에 들어가거나 하게 된다.


외계 생명체의 연구 성과 자체도 실제적으로는 너무나 미미했다. 달에는 외계인이 없다는 것은 예전에 밝혀져 있기는 했지만, 화성에까지 가봐도 ‘미생물조차’ 없다고 밝혀진 건 치명타를 가했다. 목성의 위성 타이탄? 거긴 또 언제 가보냐. 이 상황에서 몇 광년 떨어진 백조자리니 알파 센타우리니 하는 건 있는지 없는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미정이다. 콘택트에서의 명언 ‘공간의 낭비’라는 말이 참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외계인? 뭐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가. 있다 해도 몇백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데.


천문학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류 탄생의 순간에, 천문학은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학문이었다. 해, 달, 별을 보고 농사를 짓고 계절의 변화에 대비하고, 과거를 살펴보고 미래를 점쳤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등장으로 해와 달 정도 말고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은 일상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천문학은 단지 “인간이 이 광대한 공간에서 무엇인가?” 정도의 철학적 주제를 던져 주는 과학 학문으로 축소되었다. (어이 김씨, 이거 좀 나르라니까?)


그러나, 그러한 천문학도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대학원생과, 그들을 위해 망원경과 로켓을 만들어주는 정치가,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봐 주는 대중들이 있다. 솔직히 말해 우주에 대해 이 정도까지 많은 것을 밝혀낸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많은 연구자들이 정말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상한 별과 우주에 대한 주제를, 산꼭대기에서 또는 우주정거장에서 살면서 연구하고 있다. 그 전성기가 지나도 가치는 영원하다. 거기에 칼 세이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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