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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Apr 09. 2024

엄마, 왜 이혼하지 않았나요

콩가루집안

    

“엄마, 왜 아직도 이혼을 안해?”

“에휴 무슨소리야. 이 나이에 무슨 이혼”

“황혼이혼도 많잖아~ 지금이라도 이혼하고 편하게 살아”

“됐다. 지금 와서 무슨놈에 이혼을 해. 쓸데없는 소리”     


어린 시절 우리집은 콩가루였다. 더 심한 콩가루도 물론 많을 테지만 내 기준에선 콩가루집안 뽑기를 한다면 격려상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콩가루 집안에 필수 조건은 무조건 그 집안의 가장 아빠다. 아빠의 레벨에 따라 그 집의 콩가루 수준은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밖에서는 스마일맨이면서 집에만 들어오면 복싱 링 위에 올라가듯 폭력과 폭언을 분출해 내는 파이터 아빠가 나는 너무 싫고 무서웠다. 콩가루 집안의 법칙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 집에 첫째는 아빠의 희생양이 된다. 우리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아빠의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됐었다. 언니는 아빠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점점 반항아가 되어갔다. 치마가 짧아지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으며 멋진 오빠들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타더니 그길로 집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파이터맨이었던 아빠는 언니에게 휘두르던 주먹이 갈길이 없어지자 엄마와 나에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고 난 그럴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홀연히 떠나버린 언니를 미워하면서도 부러워했다. 언니는 가끔씩 내 앞에 몰래 나타나서 용돈을 쥐어주며 말하곤 했다.

“너라도 공부 열심히 해라”

아빠가 파이터맨이여서 그랬지 용돈이 없는 불우한 가정환경까진 아니었던 난 어쨌든 용돈은 받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난 매일 밤 언니와 엄마를 기다렸다. 언니는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지. 엄마의 퇴근시간은 언제쯤일지. 언니는 의적의 홍길동이 되어선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으며 엄마와 나만 만나려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졌고 엄마는 그런 언니를 안타까워하며 매일매일을 일에 찌들어 살며 밤늦게나 지친 몸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어린 내가 보아도 엄마의 삶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일뿐 아무런 재미도 보람도 없어보였다. 가족끼리 정답게 웃은적도, 함께 외식이나 외출을 한적도 없었다. 난 그런 엄마가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나버릴까봐 항상 불안했다. 부부싸움 또한 밤마다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싸움은 매번 극으로 향했고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긴밤이 지났고 다음날 엄마는 일을 나가지 않으셨다. 퉁퉁 부운 얼굴로 밤새 무슨 생각을 하신 듯 앉아계셨고 아빠가 밖을 나가자마자 엄마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짐을 들고 현관문을 향해 급히 걸어나가셨다. 그 뒷모습을 놓치는 순간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할것이란 무서운 예감이 나를 감쌌다. 난 부엌으로 달려가 커다란 식칼을 들고 현관문 앞에 섰다. 엄마가 나가는 순간 난 죽어버릴꺼라고. 엄마도 언니도 없는 이 집에서 난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였던 난 내 목숨을 빌미로 엄마를 붙잡고 늘어졌다. 엄마는 주저앉아 펑펑 우셨다. 바들바들 떨며 손에 꼭 쥐고 있던 칼을 엄마는 내려놓게 하셨고 그날 이후론 다시는 집을 나가시거나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다. 굳건히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셨고 그렇게 지금껏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계신다.     


엄마에게 그날의 기억은 까맣게 잊은 척 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구렁텅이 같은 삶에서 용기 내어 벗어나려 했던 엄마의 앞길을 막았던 그 날의 기억을 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나 살겠다고 간신히 용기낸 엄마의 결심을 무너지게 만들고 엄마의 인생을 붙잡아버린 내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항상 마음에 남아있다. 조금만 더 커서 어른만 된다면 엄마를 그땐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어느 순간에도 엄마를 놓지 못했다. 항상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되내였다. 그렇게 어느새 70이 넘어버린 엄마에게 이제야 뻔뻔하게 왜 지금껏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냐고 묻고 있다. 마치 언제나 난 엄마의 이혼을 바랬고 허락해왔던 것처럼 그날의 기억 따윈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그렇게 엄마에게 묻고 있다.      


“엄마는 사는 게 쉽진 않았어도 너희랑 떨어져 살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 이혼을 하면 아빠 성질 상 당연히 너네까지 연을 끊게 했을 텐데 엄마가 그럼 살수가 있었겠냐.. 그리고 괜히 엄마 때문에 사돈댁 입방아에 오르게 만들일을 지금 와서 왜 만들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희 가족 건강이나 잘 챙겨.”     


엄마의 선택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우리였다. 엄마는 아빠를 선택해서 사는 게 아닌 우리를 선택했기에 이혼을 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그 옛날 내가 엄마를 말렸던 그날의 기억을 품고 사셨을 지도 모르겠다. 그날 내가 꼭 쥐고 있던 칼의 기억을 엄마의 두툼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완전히 덮어주기 위해서, 엄마는 평생 너를 떠나는 선택 따윈 절대 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며 살아오셨다. 엄마의 선택 덕분에 파이터 아빠도, 홍길동 언니도, 이기적인간 포비도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막아 세웠던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더 이상 엄마에게 왜 이혼하지 않냐며 다그치지 않는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고 엄마가 지켜온 울타리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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