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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May 03. 2020

14년을 투자한 시험에서  떨어져봤어?

                                               

나는 14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걸까



 고시계의 암모나이트 겸 시조새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다.  나중에는 거의 고시 낭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험장에 갈 때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딱 봐도 조카뻘인 감독관에게 신분증을 내밀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민망함이 밀려왔다.     

 

14년 동안 시험은 내 생활의 일부이며 삶의 목표였다. 나의 30대와 40대 전반의 시간은 오직 이 시험을 위해 세팅되어 있었다. 어떤 해는 가족이 아파서, 어떤 해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혹은 내 몸이 아파서 등등의 이유로 시험을 못 본 적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꼭 시험을 보았다.



 14년 동안 일곱 번 시험에 응시했고 결국 모두 실패했다.          


 

마지막 시험에 떨어지던 날, 이제 그만 포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붙잡고 있던 이 끈적끈적한 삶의 목표를 버려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갑자기 14년이라는 시간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1년만 더 투자하면 된다고 14년은 나의 귓속에 대고 속삭였다. 그까짓 14년이나 15년이나 뭐가 다르냐고 나에게 물었다.    

       

오래 공부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나를 합격시켜 주지 않았다. 14년의 삶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14년과 똑같은 15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하면서 십 대 시절을 모두 바친 바둑계를 홀연히 떠났듯이, 나도 14년을 바친 이 시험을 포기하고 이제는 세상에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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