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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Jun 01. 2016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지 않던 그 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사노 요코, 을유문화사

     학창 시절 짝사랑의 기억 하나. 그 아이의 어떤 면 하나가 맘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짝사랑은 시작된다. 그리곤 내 맘에 들어온 그 아이에 대한 여러 정보를 다방면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긁어모은다. 혹여나 친구들이 알게 되는 날부터는 알아서 친구들이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구마구 전해 준다. 그리고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매일 밤 잠 못 자고 가슴 설레며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느 새 그 아이는 내 맘 속에서 지적인 엘리트에다 취미로 뛰어난 운동 신경까지 갖췄으며 주변인들에게 다정다감한 매너를 기본 장착한 멋진 왕자님이 되어버린다. 그랬던 그 애가 내게 관심이 있다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던 날, 그 왕자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옆에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쭈뼛거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실망스럽던지, 사진을 찍은 후 좋다고 친구들에게 뛰어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경망스럽던지...... 한 동안은 그렇게 변해버려 나의 짝사랑을 비참히 날려버린 그 애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허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 애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그 애의 한 면만 보고는 나머지 부분은 제멋대로 상상해버린(좋은 이야기들만 각색해서 들려준 친구들의 탓도 있겠다 싶었지만 사실 누군가를 짝사랑한다는 데 굳이 나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짝사랑의 상대가 쓰레기이지 않는 한) 내 탓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짝사랑은 싱겁게, 나의 남자 보는 눈이 낮음을 실감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그 짝사랑 아이가 생각났다. 그 많은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한국서 직접 공수받을 책으로 이 책을 골랐건만, EMS가 오기를 기다리며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건만, 오랜만에 보는 신간에다 종이책이라 아끼고 아껴 읽었건만, 이 책 그 아이처럼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게 정말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으며 보았던 '백만 번 산 고양이'란 동화책을 지은 작가의 책이란 말이냐? 아, 이제는 나의 책 고르는 눈이 낮음을 실감해야 하는 때인가?



     사소한 이야기들에서 그녀만의 특별한 사고를 일상적인 언어로 툭툭 내던지 듯 던지는 그녀의 말이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1980년대에(38년 생인 그녀가 40대에 쓴 글들이 이 책에 실려있다) 이런 솔직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여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기도 했다. 일본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북경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독일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중국에서 죽기까지의 그녀의 다양한 삶의 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런 면에서는 참 부럽고 놀라웠다.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무섭다. 거의 비슷한 면적에 눈 두 개와 코 하나, 입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레이아웃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눈과 입의 위치가 반대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안간 현관에 나타난 사람을 "어머, 오래간만이야, 좋아 보이는데"하고 미치코와 마리코를 착각하는 일 없이 대응한다.
게다가 미치코와 마리코가 어느 쪽이 더 미인인가 하는 판단도 순식간에 해내고, 동창회 같은 데에 가면 누구든 아이큐에 관계없이 몇십 명의 얼굴을 서로 다 구분한다.   
                                   '미녀는 응가도 못하나', p126


나에게 외국어는 거의 음악이다. 낯선 나라의 작은 도시, 작은 여관의 작은 방에 벌러덩 누워 있는 저녁. 창을 통해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어오면 내가 정말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실감을 한다. 그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온갖 악기들의 합주곡 소리 같고, 엄마가 "밥 먹어라!"하고 부르는 소리는 소프라노 가수의 아리아 같다. 대도시 기차역의 돔에 부딪쳐 돌아오는 시끌벅적한 소리는 대교향악이다. 말을 모른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외국어는 멋있는 음악이다', p243


     정말 생각해보니 사람의 얼굴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을 구별해 낼 수 있구나. 어디가 다른 지 말로 꼬집어 설명할 수 조차 없는 사소한 차이로 미인과 미남을 판단해내고. 아, 얼마나 놀랍고도 무서운 능력이냐? 외국에 여행 갔을 때 창을 통해 들려오는 외국어를 들으면 왠지 모를 감성에 젖곤 했는데 이제 알았다. 난 그것을 음악으로 들었기 때문에 그 안에 깔려있는 감성을 느낀 것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작가 만의 눈으로 독특한 생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부분들이다.



어렸을 때, 영화를 볼  때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인간의 인생은 너무 부당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중략>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남편의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 그 아내가 계속 신경 쓰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결혼이 뭔지 알기는커녕 연애 같은 것도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남편에게 미움받고 무시당하는 그 아내가 계속 생각이 났다.
                                   '더스틴 호프만은 너무 헷갈려', p132
그러나 멋쟁이는 일단 바지런해야 한다. 바지런히 패션 잡지를 살펴보고, 거리에서 거리로, 부티크에서 부티크로 바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다가 옷을 장만했다면 이젠 바지런히 손질하고 바지런히 정리하고, 그날 그날 무엇을 입을지 바지런히 생각하고, 바지런히 이것저것 입었다 벗었다 해야 하고, 바지런히 미용실을 다녀야 한다. 맞자. 화장도 해야 할지 모른다. 아, 싫다. 그래도 시시각각 나이를 먹어 간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지갑을 움켜쥐고 좋은 코트를 사자하고 번화가로 나갔다 돌아와 보면, 내 손에는 코트가 아니라 털실로 짠 바지와 어디에서 입을지 알 수 없는 승마바지, 아이가 입을 바지, 그리고 고등어 토막 따위가 들려 있다. '피곤하다 피곤해. 이제 바지런한 건 그만 하자.' 그리고 다시 늘 입을 게 없게 된다.
                             '외출복',  p193


     맨날 제대로 된 옷이 없다고, 나이를 먹었으니 제대로 된 옷 하나 장만하자고 맘을 먹건만, 제대로 된 옷을 건사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며 결국 아무 거나 사들고 들어오는 아줌마 한 명 여기 추가요.(어쩜 그리 쇼핑 리스트까지 비슷한지......) 게다가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보다 주인공 때문에 실연당하게 되는 조연들에게 더욱 애착이 가고, 이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몹시도 걱정하는 나와 너무 닮았다. 주인공들이야 잘난 데다가 그 어려운 사랑까지 쟁취했으니 앞으로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겠지만, 주인공보다 어느 면이든 모자란(착한 주인공에 비해 성격이 더럽고, 미인이라고 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주인공보다는 덜 미인이고...) 서브 인생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 말이다. 하긴 난 이제 주인공들에게까지 '지금이야 좋겠지, 살아보면 다 그게 그거더라.'라고 독설을 내뱉는 지경이다. 그래서 이 책의 다음 부분에 심히 공감을 했더랬다.

실로 리얼한 새 생활이 시작될 것이란 점이, 왠지 해피엔딩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진짜 같아서 곤란한 거다.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거짓말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서 구원받고 싶어 하는 걸까.
                 '리얼리티는 궁상맞다', p138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작가의 아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40대 이혼녀인 작가보다 어찌 보면 더 시크하고 쿨한 그의 아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나는 아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를 읽어 줬다.
아들이 퉁 하고 말했다.
"백조가 왜 오리보다 좋은 건데?"
나는 생각도 못해 본 질문이었기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오리한테 미안하잖아." 아들은 또 퉁 하고 말했다.
어린 시절 나에게 각인된, 우아하게 물 위를 미끄러지는 백조에 두말없이 설복됐던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어떻게 되면 좋은데?"
"오리는 오리로 훌륭하게 살아가면 되잖아."
아들은 말했다.
나는 매우 쩔쩔맸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왜, 오리네 식구를 갑자기 다른 집 아이로 만들어 버리냐고. 나빠."
아들은 내가 백조가 된 오리에게 진심으로 축복을 보냈던 때의 나이였다.
                     '오리 새끼', p218


요전에 심리학 책을 읽다가 '세상엔 어른 따위는 없다. 단지 어른인 척하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접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아들이 "뭔데? 뭔데?"하고 다가왔다.
나는 소리 내어 읽어 줬다. 
아들은 "맞는 말이야. 뭐 뭐인 척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나쁜 사람이야"하고 말했다. 
"예를 들면?"하고 재촉했더니, "권력자, 그런 사람은 척하는 연기를 잘할 뿐이야."라고 했다. 
음, 제법 괜찮은데. 
그러나 열세 살의 남자는 뭐 뭐인 척하는 것을 나보다 훨씬 더 잘한다. 
공부하는 척하기.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하기, 불쌍한 척해서 동정심 유발하기.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아이 따위는 없다. 아이인 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다. 아이인 척하며 아이의 권력을 휘두르지 마라. 나도 어머니인 척하는 거 힘드니까 말이야.        
                             '아이', p2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를 잃어 버렸을까? 무엇이 몇 번이고 책을 덮고 그만둘까 싶게 만들었을까? 바로 다음과 같은 부분들 때문이었다.


"언니, 어젯밤에 엄마한테서 전화 왔는데, 우는 거야...... 어떡해?"
어떻게 할까요.
나도 어디 유메노시마 하나 찾아서 전화해야지.


     뭔가 딱 부러지게 와 닿지 않는 느낌. '이게 뭐지?'하고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무슨 정서인지 알 수가 없는 부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위의 내용을 읽다가는 '유메노시마'라는 단어가 걸렸다. 여행을 다녀 온 작가에게 여기저기서 전화를 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하는 내용인데, 그래서 유메노시마가 뭐냐구? 앞에 뜻이 있었는데 내가 흘리고 넘어 갔나 싶어 책을 뒤적여보다 결국 못 찾고는 일본어 사전을 통해서야 뜻을 알아낼 있었다. 내가 글을 잘 못 읽고 있나, 내가 집중을 못하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어 다시 시작해보고 다시 시작해보고 했으나 여전히 똑같았다. 아무래도 이건 번역상의 세심함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꽤나 많이 나와 글 읽기를 방해한다. 이게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들었던 그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니 어쩌면 내 짝사랑처럼 내가 나만의 상상으로 이 책을 마음껏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정보를 몽땅 모아서 내 입맛에 맞는 기준치를 만들어 놓고 그 맛과 다르다고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아마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나와 다른 방법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멋있는 왕자님일 수도 있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이 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고 만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과 인연이 없었던 거고 만날 때가 아직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개와 고양이가 가출하지 않고 눌러살면서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고 믿고 사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 개와 고양이가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집 개는 매우 개 같고, 고양이는 고양기 같기 때문이고, 또한 고양이가 2,3일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아들이 울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개와 고양이를 다른 개와 고양이로 바꿀 마음은 없다. 가족은 바꿀 수 없는 거니까.       
 '가족',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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