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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an 23. 2021

나를 완성한 것은 질문이었다

인터뷰 프로젝트 <당신의 지금>


    1월은 새해의 첫 달이라 늘 새롭다. 가장 다양한 시도로 채워지는 달이기도 하다. 나 역시 올해 1월에는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컨셉진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당신의 지금>이다. 


    돌이켜보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시작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또 다른 서비스는 지난 글 <귀차니스트가 시장을 만든다> 참고) 몇 차례 피드에 올라온 광고가 인상 깊어서 저장해두었는데 매일 하나의 질문을 받고 꾸준히 답하면 이를 책으로 인쇄해주는 것이었다. 아이디어가 너무 탐스러워서 응원의 댓글을 남겼는데, 막상 신청하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책 디자인이나 인쇄는 해봤으니 굳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게 아니라 질문만 적당히 정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12월 인터뷰 프로젝트 신청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자고 생각하고 질문 목록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한참 싸이월드가 유행인 시절 100문 100답, 1000문 1000답 같은 것들이 많았으니 그런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뒤, 1월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몇 주 동안 내가 메모장에 모은 인터뷰 질문은 3개에 불과했다. 좋은 인터뷰 질문을 찾거나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말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2020년의 나를 기록하는 대신, 2021년의 나를 알아가 보기로.





    컨셉진의 인터뷰 프로젝트는 인스타그램에서 아래 이미지로 소개되고 있다. 나에 대해 물어오는 서로 다른 31개의 질문에 매일 대답하면 된다. 최소한으로 정해진 개수 이상을 답변하면 '당신의 지금'을 기록한 한 권의 책으로 받을 수 있다. (아래 이미지는 2월 프로젝트용이라 날짜가 부족해 3월 초까지 이어지는 걸로 보인다.) 과거에 100문 100답 시리즈들이 표면적인 질문('좋아하는 과일은?', '당신의 취미는?',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으로 구성되었다면, 이 인터뷰 프로젝트에서는 생각이 필요한 질문들을 주로 받게 된다. 나 자신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을 깨닫기도 하는 질문들이다.  


컨셉진의 인터뷰 프로젝트 <당신의 지금>


    


    가장 의욕이 넘치는 1월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만큼, 올해 계획한 여러 습관을 만드는 것에도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의 루틴을 만들었고, 아직까지 거의 빠짐없이 실행하고 있다. (딱 하루, 오전에 일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답변 제출을 점심에 한 적이 있지만 :) )


    계획한 시간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운동을 하고, 마무리 스트레칭 중에 메일로 도착한 오늘의 질문을 확인한다. (이번 달 기준으로 질문은 매일 아침 8시에 배달된다.) 스트레칭과 샤워를 하는 동안 나의 답을 고민해본다.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 반면, 어떤 질문들은 노트북 앞에 앉을 때까지 답이 떠오르지 않기도 했다. 출근 준비를 마치면 책상에 앉아 답변을 제출하고 출근한다. (재택근무 중이라 업무용 노트북으로 바꾸는 정도지만) 


    내가 기대하는 부분은 인터뷰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이 루틴을 유지해서 인터뷰 대신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 무언가를 위해 여유시간을 만들고 싶다면 느슨하지만 강제성이 느껴지는 이 프로젝트가 좋은 습관 성형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20여 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나를 탐구하다 보니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됐다. 그동안 경험한 면접이나 인터뷰가 나를 잘 이해하게 했던 것과 비슷하다. 사실 과거에 내가 쓴 글로 그때 내 생각을 읽어보려 할 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글에는 그 행동이나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마 글을 쓴 당시의 나 자신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는 조금 다르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그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설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생각에 이르는 많은 것들을 함께 담는다. 좋은 인터뷰어라면 절대로 인터뷰이의 단답형 응답을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물론 셀프로 진행하는 인터뷰이기에 나 스스로 인터뷰어가 된 기분으로 '왜?'를 꾸준히 던지며 작성하고 있다. 40대, 50대가 된 내가 읽더라도 2021년 1월의 나를 잘 이해하고 고개 끄덕일 수 있도록. 



    얼마 전 회의 시간에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 이야기가 나왔다. 2021 트렌드 코리아에서 선정한 키워드 중 하나인데, MBTI나 여러 가지 유형의 테스트로 자신의 태그를 찾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놀이적으로 풀어내고, 자신을 대신 표현하는 수단으로 만드는 점에서 많은 브랜드 마케터들이 주목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나도 스스로를 소개할 때 MBTI나 혈액형(레이블링 게임의 원시적 형태가 아닐까)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 키워드를 접한 후로는 주저하게 됐다.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와 각자의 개성을 이야기하면서 반대로 레이블링 게임에 빠져드는 모습에서 미묘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특히 고유한 카테고리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를 16가지 성격 유형 중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인터뷰 프로젝트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흰 여백에 오늘의 질문 하나를 띄워두고 답을 고민하고 있자면,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길어야 10여분 내외가 걸리는 객관식이나 척도형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나의 '레이블'을 알아낼 수 있는 테스트에 비하면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절대 손해보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한두 달만 지나도 뿌옇게 흐려질 지금의 내 생각과 꿈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는다. 




 

   작년 어느 날 휴대폰 메모장에 '나를 완성한 것은 질문이었어'라고 적어두었다. 이직을 앞두고 한 후배와의 술자리 이후 집에 와서 적어둔 문장이다. 그 친구로부터 그간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듣지 못했던 질문들을 받았다. 오래 고민하고 마음을 담아 대답한 그 날, 나조차 몰랐던 내 사고의 고리들을 발견했다.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조각 일부를 선물 받은 것 같았다.  


    때로 우리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전기 자극처럼 그저 흘러가고, '왜'를 고민하기 전에 이미 과거가 되어 돌이켜보지 않게 된다. 질문은 그 선택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다시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집요하게 묻고 나 자신을 통해 기어이 알아낸다. 그래서 계속 질문을 받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질문으로 그들의 잃어버린 조각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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