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교수의 <어디에 살 것인가>
아파트에는 마당이나 골목길이 없다. 이들은 마당 대신 거실에서 TV를 보고, 골목길 대신 복도에서 시간을 보낸다. 학교에 가면 교실에서만 지내고, 방과 후에는 상가에 있는 학원에 보내진다. 이동할 때도 봉고차에 실려 이동한다. 이들의 생활을 보면 24시간 중 거의 대부분을 실내 공간에서 보낸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공간에는 자연이 없다. 하늘을 볼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이다.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만날 기회가 없다. 지혜를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것은 자연이다. p. 33
과거 아파트와 주택에서 몇 번 번갈아 가면서 살아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추억은 모두 주택에 있을 때의 기억뿐이다. 아파트는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 건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십 채의 집이 모야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파트는 나의 감정과 연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은 마당에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크기의 건물이기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p. 41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책의 제목은 질문형이다. 흔히 우리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사 갈 집을 고르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어느 동네로 이사 가고,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몇 평짜리에 살 수 있나'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가 싫어서 여행만 가려고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다.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정해진 정답도 없다. 우리가 써 나가는 것이 곧 답이다. 아무도 채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이 공간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자문해 보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