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등교 닷새만에 벌어진 일이다
불안해했던 것과 다르게 첫 주는 무사히 지나갔다. 매일 아침 10시까지 늦잠을 자던 아이가 떨리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번쩍 떴다. 아침 7시 40분, 마스크를 하고 손 소독을 하고 스쿨버스에 탔다. 그리고 나는 약간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다. 그래도 모든 학생들은 매주 진단키트를 사용해서 학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기로 되어있었고, 아이는 등교 나흘째인 금요일에 두 번째 검사를 받았다. 금요일까지도 전교생과 전교직원은 모두 '음성'이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학교 생활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베프와 4학년에 되어 다시 같은 반에서 만났다는 이야기. 오랜만에 먹는 학교 밥이 너무 맛있어서 한 입 먹는 순간 정말 신났다는 이야기. 같은 스쿨버스에 타는 중학생, 고등학생 언니들까지 다 알고 놀릴 정도로 자기를 쫌 좋아하는 것 같은 남자애가 있는데(우리는 그 아이를 썸남이라고 부른다), 걔랑 3년 연속 같은 반이 되었다는 신기한 이야기. 그리고 4학년이 되어서 새로 만난 선생님과 새 교실 이야기 등등.
매일 마스크는 똑바로 잘 써야 한다. 친구들이랑 거리 잘 지켜라. 손을 꼬박꼬박 씻어라... 하며 잔소리할 것들은 늘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학교에 다시 간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정말 행복해했다. 어느 날은 폭염으로 한낮 온도가 34도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래도 아이는 온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안쓰럽고 짠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정말 행복해했기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했다. 새삼 학교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그다음 주인 월요일. 지난 24일. 아직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이었던 오후 2시 50분. 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중요하고 긴급한 메시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메일이 왔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일요일 저녁부터 발열 증세를 보였던 7학년 학생이 오늘 아침 검사에서 '양성' 진단을 받았다는 이메일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 동생들이 둘 있었다. 다행히 동생들은 검사에서 음성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밀접접촉자를 선별하고 위험 학년에게 추가적인 진단 검사를 실시하겠다는 것 이외의 추가적인 조치는 없었다. 하루 정도는 학교 문을 닫고 전체 방역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로 다음 날에도 정상적으로 학교 문을 열겠다고? 하루 종일 다른 학부모들의 카톡과 전화가 바쁘게 울려댔다. 교장 선생님의 이메일 끝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하는 경우 언제라도 하이브리드 수업으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지금의 학교를 즐거워하는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지난 학기의 온라인 수업을 얼마나 지루해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일단 학교 내에서 확진자가 보고된 마당에 바로 다음날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등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조심스레 나의 뜻을 내비치고, 회사에 있는 남편과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고민하다가 저녁 일곱 시쯤 되어서야 담임선생님에게 이메일을 썼다. 하이브리드 수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부랴부랴 학교 식당에 신청했던 다음날 점심을 취소하고, 스쿨버스 회사에도 연락해서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연락하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왔다.
등교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담임 선생님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가 어제 이메일을 너무 늦게 보내서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일까? 혹시나 싶어서 아침 7시경에 같은 이메일을 한 번 더 보내 놓은 터였다. 아이는 오늘 자기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우두커니 서서 물어보았다.
"아직 엄마도 업데이트된 게 없어서... 엄마가 알게 되면 바로 알려줄게..."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때 같은 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 남매를 모두 같은 학교에 보내는 그 엄마는 오늘부터 하이브리드 수업을 신청했는데, 다른 두 아이의 담임선생님과는 모두 연락이 닿았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에게서만 아무 답변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기다리다 보면 뭔가 연락이 오겠지. 우리만 연락 없는 거 아니래. 다른 친구도 그렇대. 그렇게 아이를 안심시키고 함께 연락을 기다렸다. 괜히 마음만 초조해서 커피를 한 잔 더 내렸다. 그리고 등교시간보다 40분 정도 늦게 선생님에게 답변이 왔다.
선생님으로부터 화상 미팅 프로그램 접속번호와 비밀번호, 그리고 그날의 스케줄을 받았다. 학교에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오늘부터 하이브리드 수업을 신청한 사람은 우리 아이와 아까 통화했던 그 아이, 둘 뿐이었다. 둘 다 한국 학생이었다. 근래에 나와 비슷하게 타지에서 육아를 하는 해외 육아맘 엄마들이랑 같이 왜 온라인 수업을 신청하는 엄마들은 죄다 아시안인지, 반면에 왜 백인들은 다 등교하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엄마들이 너무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건 아닐까. 확실히 서구문화권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더 독립적으로 키우는 것 같지만, 이런 시기엔 강하게 키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국제 커플이라 하더라도 엄마가 아시아 출신이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느 나라할 것 없이 비슷하게 드러나는 이 동서양의 극명한 문화 차이가 우리 학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출신지역, 문화 차이를 고려하며 특정 누군가에게만 위험한 건 아닐 터인데. 내 아이는 내가 지키고, 훗날 조금이라도 후회할 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총 7시간의 수업시간 중 아이는 3시간 정도를 화상수업으로 참여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특별 수업,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체육수업과 자유놀이시간, 그리고 가드닝과 같은 활동들은 아이의 스케줄에서 사라졌다. 프랑스어나 폴란드어 같은 이동수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학, 독서, 그리고 작문 수업만 남았다.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알아서' 채우도록 장려되었다. 전교생이 온라인 수업을 듣던 지난 학기와는 너무 달랐다. 담임선생님은 대면 수업으로 등교한 다수의 아이들을 챙기고 감독해야 했고, 원격으로 수업을 받는 아이들을 동시에 살뜰히 챙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날의 하이브리드 수업을 후회하지 않는 건, 이날 2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은 첫 확진자와 동급생인 7학년 학생이었고, 다른 또 한 명의 확진자는 두 번째 확진자의 동생으로 우리 아이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학교 내 감염이 있었던 7학년을 포함한 전체 중학교는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고, 초등학교 학생들과 같은 스쿨버스에 탄 학생들은 모두 학교를 하루 쉬며 진단검사를 받기로 했다. 내가 아는 많은 아이들이 등교는 하지 않고 오로지 검사를 받기 위해 학교에 갔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하이브리드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수에는 변동이 없었다. 솔직히 이틀 연속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그리고 학교 내 감염이 있었던 것이 확실한데도 아이들을 그대로 등교시키는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반은 변동이 없었을지언정 어쨌거나 학교 전체의 하이브리드 신청자는 10%로 소폭 상승하였는데, 여전히 수업의 형식도 퀄리티도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모니터를 통해 나는 학교에서 실제로 어떤 식으로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선명히 보았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코와 입을 다 드러낸 채로 수업하시는 담임선생님, 같은 테이블에 붙어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는 아이들. 하이브리드는 수업의 질이 너무 떨어지고, 학교를 그대로 보내자니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결국 불만스러운 선택지만 남겨놓은 채 그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오로지 엄마의 몫이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새롭게 보고된 확진자가 2주 연속으로 없을 경우 다시 대면 수업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다. 아이와 약속한 2주라는 시간은 한국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충분한 격리기간이기도 했고 그건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결심이기도 했다. 모니터 너머의 세계가 아무리 즐거워 보여도, 그리고 아이가 그것을 아무리 부러워하며 바라보아도 마음 약해지지 말자고. 적어도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그 시간만큼은 지키자고. 그리고 이 글을 쓰기 두 시간 전, 나는 네 번째 확진자에 대한 리포트를 받았다. 학교는 계속해서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전수 검사를 하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놓지만, 어느 누구의 몸에 이미 바이러스가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잠복기는 얼마나 길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게 되었다. 아이와 약속한 날짜는 다시 이틀 뒤로 후퇴했다.
부디 더 이상의 추가 확진자가 없기를, 그리고 아픈 아이들도 잘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매일 초조한 마음으로 이메일함을 열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아이의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상. 언제까지 이런 일상이 계속될지, 이제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언젠가 다시 안. 전. 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