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키운 채소들로 늘 건강한 음식만 먹어서 좋겠다고 우리 부부를 보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나도 msg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굳이 바깥음식을 사 먹으러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남이 해준 밥이 더 맛있을 나이인
나는 그저 간편하고 편한 것만 자꾸 찾다가
요즘은 양념만 한 팩씩 만들어져 있는 걸 사 와서 간편하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도 있으니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인다.
담백한 반찬들만 해 먹다가 조미료 들어간 감칠맛 나는 양념들은 어떨 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입맛을 당긴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하고 다시 집반찬으로 돌아오지만 가끔씩 이런 외도를 좋아한다.
오이, 가지, 고추, 깻잎, 호박 등 텃밭에 나가면 채소들이 넘쳐나서 입맛대로 골라해 먹을 수
있으나 넘쳐나는 채소들은 뭘 해 먹지? 가
아니고 반 강제적으로 어떻게 해 먹을까? 를 고민하게 한다.
도마를 꺼내고 주르륵 흐르는 물소리에 똑딱똑딱 썰어대는 칼질소리, 분주한 손놀림인 주부의 뒷모습은 무언가 뚝딱하고 만들어질 것 같은 궁금증을 유발하더니 이내 솔솔 맛있는 냄새로 코를 킁킁거리게 만들어 없던 식욕도 자극한다.
주부 내공 36년 차에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수레바퀴이다.
모든 것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를 비장한 뒷모습에 담아내곤 야채를 씻고 데치고 고기를 볶고 찰찰 양념들을 털어내어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비벼댈 때쯤 냄비 속에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아 이때쯤이면 준비가 끝났으려나!
마침 "밥이 다 되었습니다"
똑똑한 전기밥솥 소리가 밥시간을 알려준다.
그나마 밥 짓는 손길만큼은 줄어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을 하고 시댁 부엌을 처음 들어갔던 날 흙바닥의 아궁이 두 개 위에는 큰 가마솥이 반짝거리며 앉아있었고 석유곤로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석유곤로를 처음 보던 나는 훅 끼치는 석유냄새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하고 있는 시어머니 옆에 앉아있다가 새색시 꽃분홍치마에 불똥이 튀자 어머님이 놀래서 "저리 비켜있어라" 하시며 온몸으로 막아서시던 기억이 새로 새록 떠오른다.
친정에선 그나마 연탄불로 냄비밥을 하여 시시때때로 끓어넘칠라 지켜보며 부엌을 진두지휘하던 엄마는 항상 마지막엔 냄비밥의 누룽지로 입가심을 하도록 아버지께 갖다 바치곤 했으니 지금 시절이야 거기에 비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는 호강에 빠진 세상임에도 불구하고은퇴 없는 전업주부의 삼시 세 끼라는 늪에 빠진 나는 그저 허우적대느라 어머님들의 노고를 항상 잊어버린 체 살고 있다.
오늘은 평생 못 벗어나던 음식에 대한 정성을 살짝만 내려놓고 여름 채소 반찬에 입이 지치고 속이 냉한 것 같아 떡볶이 소스를 사 와서 반만 넣고 내 고추장 한 스푼 넣고 후루룩 섞어서 일명 '내 맘대로 떡볶이'를 짠~ 하고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