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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Sep 25. 2021

매월 25일 나 돌아갈래! 를 외치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의 나라 핀란드

매월 25일은 월급쟁이의 최대 기쁨의 날인 우리 회사 급여일이다. 특히나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9월이 매년 인상된 급여가 적용되기 시작하는 달이자 일 년의 보너스가 지급되는 달이라 어제 9월 25일은 일 년 중 가장 설레는 급여일이다. 적어도 핀란드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급여라는 게 원래 많다 적다의 느낌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참고로 나의 경우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20년 남짓의 경력이 있고 벤치마킹 데이터 상 지극히 중간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음을 전제로 해 본다(각 나라/산업/직군/경력(경험, 기술, 지식 등) 등으로 세분화된 급여 벤치마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있고 많은 회사에서 이 벤치마킹 데이터를 사용한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9월은 풍요로운 달이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구매 목록에서 큼직큼직한 것들을 살 수 있는 달이었다.


핀란드에 오면서 회사 내부 정책에 따라 한국에서 받던 급여는 핀란드의 벤치마킹 데이터의 같은 위치를 적용하여 유로로 전환되었고 물론 고용관계가 있는 핀란드 지사에서 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고용계약서를 쓰던 당시에만 해도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게 어디냐며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명하였으나 평소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곳의 급여 수준이 한국보다 높지 않음에 살짝 실망하긴 했었다. 벤치마킹 테이블을 쭉 훑어보니 '물가 (cost of living)와는 별개로 '인건비'(cost of labor)는 한국의 같은 직군 벤치마킹 테이블에 비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결과적으로는 급여가 낮춰져서 이동하게 된 셈이다.


게다가 첫 월급을 타고 믿을 수 없는 실수령액에 알 수 없는 핀란드로 쓰인 급여명세서를 번역해 가며 몇 번을 반복하여 읽었는지... 한국에서도 사실 급여명세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긴 힘들다. 세율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뭐 전문가들이 알아서 계산했겠지 싶은 믿음에 대충 4대 보험 정도 확인하고 닫았던 것 같다.

핀란드에서는 입사하면 본인의 세금카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세금카드는 물리적 카드라기보다는 국세청 사이트에서 연간 예상 총소득을 입력하면 본인의 세율이 몇 퍼센트인지 정해서 알려주는 정보다. 세금카드를 제출하지 않으면 무려 60%의 세율이 적용되니 개인의 현금흐름에 지대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연말정산을 통해 실제 소득 기준으로 다시 정리할 수 있는 단계가 있다. 보너스 포함 연간 예상 소득을 입력해서 내가 받은 세율은 35%. 그런데 연말정산에서는 매년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결과였으니 내 세율은 35-40% 정도인 것 같다. 35%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세금이 적용되는 소득의 범위가 매우 넓고 반면 세액공제 되는 게 매우 제한적이다. 회사에서 여름휴가 때 읽으라고 책 선물을 받아도 다시 액면가를 회사에 보고해서 소득으로 잡아야 하고, 회사 주식을 받거나 할인가에 구매할 경우에도 받을 때 과세 (vesting이 언제 되는지에 따라 세율이 다름), 팔 때에도 과세한다. 한 번은 상을 받아서 100유로 쿠폰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어김없이 과세되어 있다. 실업급여나 연금도 다 과세하니 뭘 할 말은 없다. 실제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세율은 유럽에서도 악명이 높다. OECD 국가에서도 중산층 가족 대상 세금을 많이 걷는 나라 중 하나로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과 함께 상위권에 속한다.


최근 헬싱키시에서 세계에서 IT인재들을 모셔와서 집도 제공하고 어린이집 등의 편의시설도 제공하며 핀란드에서 살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급여 수준이 맞지 않아 모두가 떠나버렸다. 복지 국가인 만큼 복지 수준은 훌륭하지만 실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굳이 급여를 엄청 깎아서 올 장점이 없다. 세 자녀가 있는 나도 받는 거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세금 내는 게 아까운데, 하물며 건강하고 자녀도 없고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연금 받으려면 아직 너무 젊은 인재라면 더더욱 이곳에 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난 추워지기 시작하며 날도 짧아지는 가을의 길목 9월에는 살짝 우울하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평소 나의 지론으로 이렇게 타국에서 돈 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복에 겨운 사람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매년 9월에는 연례행사처럼 핀란드에 살아서 좋은 점 리스트를 작성해 본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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