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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Dec 31. 2022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한양도성 1

계획도시, 한양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새 왕조의 권위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새로운 도읍으로 한양을 선택합니다. 새 궁궐의 위치를 정할 때, 먼저 하륜이 무악(서대문구에 위치한 지금의 안산) 주산론(主山論)을 펼쳤습니다. 주산(主山)은 풍수지리 사상에서 도읍이나 궁궐터, 무덤 자리를 정할 때의 뒷산을 이르는 말이고, 주산론(主山論)은 한양 천도 당시 궁궐을 정할 때 임금이 정사를 보는 최고의 명당자리를 두고 일어난 논쟁을 가리킵니다.


하륜의 주장이 받아졌더라면 지금의 연세대학교 자리가 경복궁의 위치가 되었겠지요. 하지만 무악은 터가 좁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배제됩니다. 다음으론 무학대사가 선택한 인왕산과 개국 공신 정도전의 비호를 받은 백악(지금의 종로구, 성북구에 걸쳐있는 북악산)이 주산의 자리를 두고 맞붙습니다. 이는 마치 불교와 유교가 대립하는 것 같은 양상을 보였는데요 고민하던 이성계는 결국 정도전의 백악 주산론에 손을 들어줍니다.


1394년 10월 한양 천도를 감행한 태조는 이듬해 9월 백악 아래에 경복궁(景福宮)의 중요한 전각들을 대부분 완공합니다. 이어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들어서고, 1396년에는 한양도성 성곽이 건설되면서 계획도시 한양은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도성 성곽에는 대문 4개와 사이마다 소문 4개를 만들어 도성 안팎으로 왕래를 용이하게 했습니다. 4개의 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사라지고 없음), 남쪽의 숭례문, 그리고 북쪽의 숙정문입니다. 4소문은 동소문인 혜화문, 서소문인 소의문(사라지고 없음), 남소문인 광희문과 북소문인 창의문입니다. 8개의 문 중 현재까지 6개의 문이 남아있거나 복원되었지요.    


그 후 태종 때 창덕궁, 성종 때 창경궁이 추가로 건설되었지만 임진왜란을 맞아 모두 불탔고 전쟁이 끝나자 광해군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과 창경궁을 수리하고, 새로운 궁궐 경덕궁(지금의 경희궁)과 인경궁(지금의 사직단 북쪽)을 더 짓지만, 인경궁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난 이후 곧장 헐려나가는 신세가 됩니다. 따라서 임란 이후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을 법궁(法宮)으로 삼아 정사를 이어갔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불타고 버려졌던 경복궁은 고종 9년(1872) 흥선대원군에 의해 280년 만에 중건,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그러나 고종은 경복궁이 아닌 임란 직후 선조가 잠시 거처로 삼았던 경운궁(慶運宮, 지금의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1897)하고 경운궁이 대한제국의 법궁으로 우뚝 서게 되지요. 이렇게 해서 옛 한양의 영역인 현재의 서울 종로구와 중구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다섯 개의 궁궐과 제사 공간인 종묘, 사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정호가 제작한 한양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 1825년경,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입니다. 으뜸 되는 선의 공간, 즉 '수선'은 바로 수도 한양을 의미합니다.


한양도성은 야외박물관    

 

한양도성(漢陽都城)은 이 모든 시설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을 일컫습니다. 좁은 의미로는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 전체를 가리킵니다.  

    

1396년 태조는 전국의 민간인 장정 약 20만 명을 동원합니다. 놀랍게도 98일 만에 총 59,500척(18.6km)의 토성(土城)과 석성(石城)으로 된 성곽을 쌓았습니다. 초고속 공기입니다. 이를 600척 단위로 97개 구간으로 나누고 천자문의 천(天) 자부터 조(弔) 자까지 차례로 붙여 구분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양도성은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수도의 권위와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조선 왕조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히 완공한 탓일까요? 30년이 채 못되어 성곽의 절반이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나라 부실시공의 역사가 꽤나 길지요?ㅡ.ㅡ 이에 1422년 세종은 태조 때보다 많은 32만 명의 장정을 동원해 토성을 모두 석성으로 바꿔놓습니다. 제대로 쌓아 올린 세종 대의 성벽은 지금까지도 견고하기로 유명합니다. 역시 세종대왕!^^


또 숙종 30년(1704)에도 대규모 보수공사가 있었는데요, 이때에는 도성 수비군인 오군영의 군인들을 불러 공사를 실시하고 감독관과 석공의 이름 및 날짜를 성돌에 새깁니다. 공사실명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성벽은 매우 견고하고 규격화되어 보기에도 질서 정연합니다. 축성 기술이 한층 발전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무래도 민간인이 아닌 군인들의 솜씨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데 허술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도 영조, 순조, 고종 대에 걸쳐 조선 왕조 500년간 끊임없이 크고 작은 개·보수가 이루어졌으니 도성에 들인 노력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한양도성은 세계에서 최장기간 도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도성의 바깥쪽을 따라 걷다 보면 성돌 쌓기(축성)의 발달 과정이 잘 드러나니 이를 음미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성돌 쌓기의 변천사를 익힌 후 성벽을 따라 걸으면 신기하게도 축성연대가 눈에 들어와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답니다^^

          

낙산 구간에 모아둔 소속 군영과 직급, 책임자 등이 새겨진 각자(刻字) 성돌입니다.


남산 자유센터 건물 축대에 새겨진 ‘강자 육백척(崗字 六百尺)’의 탁본입니다. 97개 구간 중 강자 구간 600척의 시작점이라는 뜻이지요.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이렇게 500년간 보존, 관리되어 오던 도성은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후 일제에 의해 추진된 성벽 처리 위원회에 의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는 것을 시작으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소의문(1914), 돈의문(1915), 광희문 문루(1928), 혜화문(1938)이 사라지고 여러 구간의 성벽이 철거되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과 도시개발 미명 하에 더 본격적인 훼손이 이루어집니다. 1974년에 이르러서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18,627m 중 약 70% (2022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해 뜰 무렵 시작해 해 질 무렵까지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巡城) 놀이를 즐겼습니다. 자연적인 산세를 이용해 건설된 한양도성의 아름다운 경치는 구한말 조선에 막 도착한 외국인에게도 소문날 정도로 핫플레이스였지요. 그들이 하루 만에 끝낸 순성놀이를 지금은 4~6개 구간으로 나누어 돌아보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한두 구간을 돌아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옛사람들의 체력은 놀랍습니다.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날렵했기에 가능했을까요?^^;      


체력도 문제지만 한양도성 답사는 욕심내지 않고 한 구간씩 음미해나가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구간을 나눠 천천히 걸으면서 계절 따라 달라지는 풍광을 즐기고 보물찾기 하듯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옛사람의 마음이 되어보고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마음 통하는 친구와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기에도 최적의 장소랍니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한양도성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냅니다.(인왕산구간)


도성 답사는 한양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을 중심으로, 인왕산구간(숭례문~창의문), 백악구간(창의문~혜화문), 낙산구간(혜화문~광희문), 남산구간(광희문~숭례문)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숭례문 구간과 흥인지문 구간을 따로 빼서 6개 구간으로 나누기도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숭례문 구간을 인왕산구간에, 흥인지문구간을 낙산구간에 포함시킵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한양도성 답사를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특히 네 구간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구간일 뿐 만 아니라 훼손이 적고 이야기가 풍부한 인왕산구간 답사를 권합니다. 최근에 골치 아픈 일이 좀 있었던 친구는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보 1호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던 남쪽 대문인 숭례문에서 출발해 북소문(北小門)인 창의문까지 가다 보면 성곽이 끊어져 더러 방황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숨바꼭질하듯 다시 도성의 흔적을 찾아 더듬어 가다 보면, 가파른 인왕산 정상을 숨 가쁘게 지나 어느덧 고즈넉한 창의문에 다다르게 되겠지요.

한양도성 1~ 4구간입니다.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구간은 뭐니 뭐니 해도 인왕산구간(4구간)이지요^^

      

다음 글에서는 인왕산 구간의 첫 발을 딛도록 할게요! 함께 가실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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