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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un 19. 2021

좋은 취향 (1)

댄디, 아름다운 것들로 채운 삶


친구와 나는 수년 전 비슷한 시기에 각자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서로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꽤 많은 연봉을 받았음에도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품위유지를 위해 소위 말하는 '신상'을 족족 사들이느라 월급을 탕진하고, 해외 핫한 유명 숍들을 쫓아다니느라 휴가를 전투적으로 보냈다. 근무시간과 근무 외 시간의 경계가 불분명한 채 트렌드를 흡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 요인은 서로 다르지만,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이 없으니 우리 둘 다 빈털터리 임에는 같았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 동안 누리지 못했던 '사사로운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대낮에 한가로이 카페에서 목적 없는 얘기를 나누고, 훌쩍 동해바다를 보러 떠나기도 했다. 시장조사와 상관없이 쇼핑을 하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좋아하는 일이라서 시작했는데, 막상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의 괴리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을 마시며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에 밤새 빠져들기도 했고, 앞으로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좋을지 긴 토론을 하기도 했다.


난 우아하게 살기로 했어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읽고 영감을 얻은 친구는, 가난하니까 우아하게 살아야겠다고 했다. 그동안 피상적 성공이라는 것을 쫓아봤지만 여전히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마음은 늘 곤궁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끄러운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서 책 읽고 글 쓰며, 아름다운 것들로 채운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표현한 '우아한 삶'이란 말하자면 댄디의 태도이다.




댄디즘의 시작

멋쟁이, 옷 잘 입는 남자를 뜻하는 댄디(Dandy)의 어원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최초의 진정한 댄디는 19세기 초, 영국의 조지 브라이언 '보' 브럼멜(George Bryan 'Beau' Brummell,  1778-1840)로 기록되고 있다. 브럼멜은 당시 황태자였던 조지 4세와 각별한 사이로서 영국 사교계의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었다.

(옷 입기 외에 그의 업적이나 행적에 관한 다른 역사적 기록은 거의 없다. 부유한 런던 가문에서 태어나 윈저의 이튼 칼리지에서 수학하며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물려받은 유산으로 메이페어에 저택을 짓고 오직 옷 입기에 열중하며 살았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옷 잘 입는 일반인'인 셈이다.)


19세기 초기의 산업자본주의 사회는 과시적 물질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부르주아(Bourgeois)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귀족 취향의 옷차림으로 자기가 가진 것들을 온 세상에 과시했다. 그러나 브럼멜은 그러한 부루주아적 태도를 거부했다. 그는 과감할 정도로 심플한 디테일과 절제된 색상을 추구했다.


Brummell의 초상. 퍼블릭 도메인


진정으로 우아하게 입으려면,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 보 브럼멜-


심플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옷을 쉽게 입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옷을 경건하게 대했다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브럼멜은 언제나 눈처럼 하얗게 표백해 손질한 리넨 셔츠와 최고급 소재의 의복을 갖춰 입었다. 옷태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옷태(fit)를 완성하기 위해 최고의 장인들에게 세세하게 지시를 하는 통에 장갑 하나를 만드는데 세 명의 테일러가 각기 다른 부분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그는 매일 깨끗하게 씻고 말끔히 면도하며 향수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샴페인으로 구두의 광을 내고 크라바트(cravate, 넥타이의 전신)의 주름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맸다. 브럼멜은 몸단장을 꼼꼼히 하는 것을 에티켓으로 여기며 외출 준비에 5-6시간을 투자했다. 이와 같이 현란하고 과시적인 기존 스타일에 반대되는 브럼멜의 스타일은 근대 남성복의 기초가 되었고, 런던이 남성복 테일러링의 중심지로 부상하는데 공헌했다.




무심함

브럼멜이 확립한 댄디의 초상은 단순히 '옷 잘 입는 남자들'의 의미를 넘어선다. 브럼멜은 댄디즘(dandyism)을 어떤 태도와 연결 지었다. 댄디는 공들여 꼼꼼하게 몸단장을 하되, 가장 절제되고 단순해 보이도록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쿨(cool)함은 댄디들이 의도하여 드러내는 일관된 애티튜드이다. (속된 말로 무심한 척 시크한 '꾸안꾸'룩의 원조격이랄까.)


만약 사람들이 당신을 주시한다면, 결코 옷을 잘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딱딱하게 보이거나, 너무 달라붙는 옷을 입었거나, 너무 유행하는 옷차림인 것이다.
-보 브럼멜-


경박하고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 냉정하고 태연한 태도 유지하기.

댄디들의 이러한 태도는 무심함, 무관심, 거만함, 냉담함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물질보다 정신적 영역에 집중하고 오직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며 삶을 즐기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에 만연한 부의 열망과 유행의 추종을 비웃고,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규칙을 지배하며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작가 쥘 바르베 도르비이(Jules Barbey d'Aurevilly)는 '댄디즘은 근대의 혼잡함 속에 고대의 차분함을 도입했다'라고 평했다.


무기력한 댄디(Le dandy nonchalant, 1901 Edwart Loevy) ⓒMusee des Beaux-Arts. 댄디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





정신적 귀족주의

댄디즘을 단순히 외모 치장의 취향 문제에서 예술가가 지녀야 할 하나의 철학으로 격상시킨 것은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였다.

댄디즘은 경박한 이 세상에서 소외된 정신적 영역에 집중했기에, 실용성을 배제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탐닉한다. 보들레르는 댄디가 추구해야 할 단 하나의 가치는 우아함이라 여겼고, 오직 아름다움을 위해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검열했다.


댄디는 쉬지 않고 우아함을 추구해야 한다. 거울 앞에서 살고, 거울 앞에서 잠들어야 한다.
-보들레르-

자기 자신을 신앙으로 삼았던 '저주받은 댄디' Baudelaire (by Edouartd Manet) 퍼블릭 도메인


보들레르는 1863년《피가로(Le Figaro)》지에 연재한  <현대 생활의 화가(Le Peinture de la vie modern)>에서 댄디의 특징으로 '부를 열망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다. 댄디즘은 근사한 외관과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정신적 귀족주의의 우월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댄디즘은 구태연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타인에게 놀라움을 유발하는 기쁨이며, 타인과 다른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만족감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창조해가기 위해 불태우는 열정이다.


댄디즘은 독창성을 얻기 위한 불타는 욕구, 일종의 자기 숭배이다. 타인에게 놀라움을 일으키는 기쁨이자, 자신은 결코 놀라지 않는 자랑스러운 만족감이다.
-보들레르-




우아함이란 곧 절제이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는 우아함(elegance)의 어원이 라틴어 엘리제레(eligere), 즉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다'는 동사에서 유래함에 주목한다. 우아한 삶은 군더더기를 버리고 핵심만 취하는 비움의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보들레르는 댄디즘의 우아함을 금욕적 절제와 극도의 단순함에서 찾고자 했으며 이를 위한 궁극의 색으로 블랙을 예찬했다. 그는 부재와 죽음, 밤을 상징하는 검은색이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이라고 여겼다. (검은색에 관한 성찰은 여기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하나의 예술로 여기며, 절제된 우아함을 추구하는 댄디들은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90-1824),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Robert de Montesquiou, 1855-1921)등이 대표적이다. 예술지상주의 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사람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되거나, 아니면 예술 작품을 입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사유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지독히 우아한 댄디였다.  


예술지상주의 작가 Oscar Wild (1882, by Napoleon Sarony) 퍼블릭 도메인
'시인이자 건방진 댄디'로 불리었던 Montesquiou (1897, by Giovanni Boldini) 퍼블릭 도메인. 




댄디즘은 부르주아의 천박한 물질주의와 속물 취향에 대한 반발로 오직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심미적 저항이었다. 그리고 우아함은 시끌벅적하고 교양 없는 세상과 자기 자신을 구별 짓기 위한 예술가들의 모럴이다.


우아함은 부의 축적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한 태도이다. 물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물질적 충족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것들을 채우고 나서, 우아한 삶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개인이 지닌 정신적 깊이로 판명 난다.

세상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키워 미적 안목으로 사물을 선별하는 독자적 취향과 태도. 그리고 예술과 삶을 일치시켜 아름다운 것들로 삶을 채우고 향유하는 정신. 바로 이것이 우아함이다.


자, 우아한 삶을 살 것인가는 이제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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