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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Aug 22. 2024

 인생은 바람처럼 흐르고  

딸들의 가족과 우리들의 이야기

맏이인 큰 딸이 손자 손녀와 한국에 온 지 며칠 지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약속 장소인 호텔로 향했다. 약속 장소가 하필이면 광복절 날, 광화문 근처 호텔이었다. 한국에 살지 않는 큰딸은 광복절이 돌아오면 광화문 광장은 언제나 데모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장소를 바꾸라고 말하기도 피곤하다.


차가  밀리지 않을까 살짝 염려를 하면서 용산에서 택시를 타고 달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광화문 근처쯤 오니차기 밀리기 시작하고 사람들 물결로 어수선하다. 경찰 차는 도로 한쪽에 줄지어 서 있고 경찰과 데모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매우 혼잡하다. 이 뜨거운 폭염 속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팻말을 보니 전국에서 올라온 듯 각 도시이름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떻게 간신이 호텔 문 앞에 우리 부부를 내려 주고 기사님은 하니 떠나고, 호텔정문으로 들어 가려하니 문이 잠겨있어 난감하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불이 켜 있어 영업은 하는가 보다 하고 안심을 했다. 남편은 답답한지 딸에게 전화를 해 보라 채근하지만  전화를 한다고 답이 나올 사항이 아니다.


나는 가만히 있어 보라 말하며 여기저기 열린 문이 없나 호텔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지하 주차장 들어가는 쪽 문이 열려있다. 아마도 큰 도로의 데모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화장실을 가기 때문일 것이란 추론을 해 본다.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거기 모인 분들은 거의 나이 든 분들이다. 생리적인 욕구는 어찌할까.


그분들을 무엇 때문에 이 폭염에 그늘도 없는 도로에 서 있을까? 나는 알 수 없어 답답하다.


호텔 문을 들어서면서 다행이다. 하고 잠시 뒤를 보니 큰 딸과 손자 손녀가 서 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포옹을 하며 안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제 만나도 반갑고 기쁘다. 우리는 바로 식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거의가 젊은 사람들이다. 어쩌다 중년들도 보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주로 많다. 



아니 이곳 식대가 얼마인데 젊은 사람들이 이리 많단 말인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몇 년에 행사  있을 때 한 번씩 오는 곳이다. 젊은 사람들과 추구하는 경제관념이 달라서 그럴까? 그들도 행사차 왔는지 모를 일이지만 밖에서 느끼는 풍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모두가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다.


나는 시골스러워 그런지  좋은 음식이 있는 뷔페에 가면 입맛을 잃고 만다. 비싸다는 대게를 먹어도 푸석하고 맛있는 줄을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은 많지만 무얼 먹을까, 망설인다. 부드러운 연어 초밥과 샐러드를 좀 가져다 먹고 식사를 마쳤다. 지금까지 평범한 음식만 먹고 살아온 내 위는 색 다른 음식을 거부한다. 참, 촌스럽기는......


딸이 아빠 엄마 맛있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표현을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사양하고 싶다. 일 년에 한 번이나 아님 몇 년에 한 번뿐인 호텔 식당  분위기를 즐길 줄 모르다니 내가 딱하기는 하다.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 하지만 살아가는 가치와 목표가 다를 수 있어 무엇이라 표현은 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이라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부모라고 자식들에게 자기 사는 방식대로 살라고 강요는 절대 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만큼 거기에 발맞추어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어 주는 편이 마음 편하다. 


식사를 마친 뒤  남편은 손자 손녀에게 용돈봉투를 건네주고 나는 애들이 갖고 싶다는 수놓은 찻잔 받침과 작은 주머니와 출간한 내 책을 선물로 주니 엄청 좋아한다. 좋아해 주어 다행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 만날 때마다 잊지 않고 용돈을 챙겨야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마음에 저장할 것이다. 


멀리 살고 있는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밥을 먹고 바로 호텔 부근 스타벅스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벌써 둘째네 가족, 셋째네 가족 막내딸까지 모두 온 가족들이 모여있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인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이지만 혹여 다 같이 모이는 것이 번거롭다 싫어할 수도 있을 텐데 소리 없이 함께 해 주는 가족 모두에게 고맙다. 남편은 가족들 만남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가족 화목이 으뜸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 뜻을 헤아려 주는 딸네 가족들이 감사하다. 자식들도 독립해서 성인이 되면 자기들만의 생활 방식을 지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딸네 부부는 자식 키우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로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만 본다. 한국에 있는 손자 셋도 다 모였다. 남편은 손자들을 볼 때마다 용돈 봉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아직도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든든하다. 


부모 자식이지만 줄 수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아직은 우리 부부가 자식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는다. 사람의 관계는 서로의 배려와 사랑이 더 중하다.


                                  손자 손녀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


아이들은 만나면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놀이를 하면서 즐기는 모습도 보기 좋다. 세쨋 딸의 센스 있는 선물에 애들은 즐거워한다. 아이들 노는 것, 딸들과 사위들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지나온 세월에 대해 감회가 새롭다. 그 세월 옛날의 우리들 삶, 어쩌면 가족 구성원은 남편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었다.


우리 모두의 가족은 남편과 내가 젊어 이삼십 대에 만나 결혼하고 이루어온 삶의 여정이다. 지금,  팔십의 나이를 훌쩍  넘긴 우리 부부는 저물어 가는 황혼이다. 뜨는 해가 아름답지만 지는 해 노을도 아름답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우리 자녀들의 삶을 응원한다.

 

바람이 있다면 남편과 나는 물 흐르듯 살다가, 어느 날 지는 해처럼  세상과 이별을 할 것이다. 남겨진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지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삶이란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하다.  잘 사는 삶이 무엇인지 내 머리에 떠나지 않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인생은 바람처럼 흐르고 우리는 노년이 되었다.


만남은  짧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마음 안에 얼마만큼 행복한 사람인가 보다는 무엇으로 행복한 사람인가를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얼마간의 이별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의 마음 안에 그리움을 담아 두고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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