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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51년 된 부부의 일상,
궁금하세요?

호랑이 띠 남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

by 이숙자


결혼한 지 51년 부부의 일상, 궁금하세요?


아침에 부엌에서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나면 "남편이 일어나셨구나 알게된다. 일어나서 그날 먹을 요거트와 야채주스, 물을 챙겨 놓는 남편은 나를 보고 맨 먼저 "굿모닝"이라고 말한다. 다음에 하는 일은 베란다의 화초들과 인사를 한다. 물을 주고 닦아 주고, 화초들과도 대화를 한다. 화초를 기르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그럴 때 모습이 제일 보기가 좋다.



집 베란다 화초


우리 부부는 손주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각기 다른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손주가 떠난 후에도 계속 그렇게 지냈다. 편하고 좋다. 각자 방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남편 나이 칠십이 되어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편 스스로 찾아 하는 집안일을 나는 만류하지 않았다.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적적하지 않고 재미가 있으니까.. 차 마시는 시간이 되면 때때로 남편에게


“보이차 좀 주세요” 하고 말을 하면 금방 보이차를 우려 준다.

" 여보, 차 맛이 좋은대요”


하고 칭찬의 말도 잊지 않는다. 보이차는 나보다 남편이 더 잘 우린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이 맞다. 내가 차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남편도 옆에서 보고 곧잘 하신다. 다도 행사에도 참여하여 어려운 보이차 찻자리도 함께한다. 다도를 하면서 함께 누리는 삶의 여유다. 부부라고 하면 "사람들은 좋은 취미네요" 하고 인사말도 건넨다. 그 말이 싫지는 않으신 듯하다


봄이 오면 진달래 화전 만들어 차도 마시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봄에 만 만나는 진달래 화전


올해로 결혼 51년 차인 남편은 호랑 띠, 나는 원숭이 1968년 결혼하여 네 명의 딸을 얻었고, 지금은 모두 결혼해서 멀리 떠나갔다.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 그 세월들.. 난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기는 바라지 않는다. 이 나이가 딱 좋다. 얼마나 많이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견뎠는지, 이제는 나 자신과도 타협하고 남편을 이기는 삶의 지혜도 알게 되었다.


성격이 대쪽같이 강한 남편은 누가 뭐라 해도 자기만의 성곽을 쌓고 있다. 누가 도전하면 한 번씩 포효하는 호랑이로 변모하다. 호랑이도 아주 무서운 호랑이. 평소에는 조용하고, 과묵하고 속이 깊고 정도 많. 책임감이 강하고 정확한 사람이다. 원숭이인 나와 다른 부분이 많다. 가끔은 맞지 않은 부분 때문에 도전도 해보지만 이길 수 없는 관계이다.


젊어 수없이 많은 날 아파도 했고,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처럼 “나도 가출 좀 해볼까?” 생각해보았지만 몇 시간일 뿐 다시 그 자리에 머문다. 사람이 사는 일은 다 마음 안에 있다. 자기를 이기고 지는 것도 마음이요 행복도 마음 안에 있음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 했음에 그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못하고 나 자신의 생각만으로 혼자 아파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남편에 대한 탐구를 했다. 나를 바꿔야 내가 살 수 있다.


“내가 군대 다녀온 후 앞 마을 아가씨와 만나고 좋아하게 됐는데 아가씨 부모님이 무척 반대를 하셨지. 이유는 내가 군대 갔다 온 직후라 직업도 없고 경제력도 없다고, 그녀의 부모는 딸의 의사도 외면하고 학교 선생님과 선을 보게 하고 결혼을 종용하게 되니,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아가씨가 결국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어, 난 결심을 했지, 어떤 일이 있어도 나와 비교한 상대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거다. 그 상처로 인해 쾌활했던 성격이 과묵하고 의지력이 강한 사람으로 변했고 더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가 됐어.라고


남편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고백을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지난 일에 연연하면 무엇하겠는가 떨쳐내야 하지, 그러면서도 때때론 마음에 걸리고 아팠다.


남편은 그 후로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면서 노력을 했다 한다. 그 노력의 결과로 자립하고 결혼해서 딸들 네 명을 서울로 대학보내고 큰아이 미국 유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날을 자신과 싸우면서 인내하고 살아왔을까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시금 남편의 삶을 이해하고 나 자신과도 타협을 한다. 남다른 강한 의지는 누가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주 단단한 사람이다.


"원하는 데로 살아 주자" 내려놓고 살면 평화가 온다는 진리를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본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이 들어 남편의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리고 애달프다. 날마다 최선을 다 하고 싶다. 하루하루 삶이 소중하기만 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어 따뜻한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음도 축복이다.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낸 이유를 알기에 온 마음 다해 존경심을 전한다.


당신이 있어 세상이 따뜻했고, 가정이란 둥지 안에서 엄마란 이름으로 살아왔노라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낸 이유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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