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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은 Sep 03. 2020

나이테를 발견한다는 건

못 보던 주름이 생겼다

평소처럼 왓챠를 보다가 손등과 손바닥 경계, 뭐 구차하게 자세한 설명을 보태자면 생전 관심을 갖고 본 적도 없는 손목 측면에 생긴 주름을 발견했다. 손바닥에서 감히 손등으로 올라오려고 뻗친 그 주름의 모습이 나는 낯설고 너무 무서웠다.


주름이 손바닥에만 머무를 때는 위협적이지 않다. 대개 손바닥에 있는 주름, 손금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고 장수하네 마네 부자가 되네 마네 등의 운명을 점칠 때나 주목해보는 장난스러운 존재에 가깝다. 손바닥의 영역을 벗어나 손등을 침범하는 주름은 더 이상 장난스럽지 않다.


"이것 좀 봐"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다 그 정도 주름이 있는데 뭐"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없었는데..라는 말만 하며 나는 그 주름을 문질렀다.위로 잡아당기고 밝은 곳에서 다시 봐도 이건 지워낼 수 없는 주름이다.


진실은 마치 그 주름을 목격한 순간에만 있다는 듯이 나는 주름 외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눈에 띄지 않는 부위였는데도 주름을 발견했다는 게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어디 가서 주름 많다고 해봐, 들은 사람이 혼낼 걸"


나는 나의 두려움을 생각하다 문득 나보다 먼저 나이가 들어버린 부모님은 어땠을까 생각한다.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이 주름들을 봤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지 어린날의 그들에게 연민을 가졌다. 처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 순간을 너머 오랜 시간에 걸쳐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간이 그저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기어이 제 자국을 남겼다. 통증도 없이 깊게 파이다가 내 몸에 이리저리 길을 내고는 그 존재만으로 괜스레 상처를 준다. 주름을 마주하며 보이지 않는 상처로 가득 차는 게 어른의 일인가. 점점 늘어날 나이테를 지켜보면서, 나이테가 없는 시절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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