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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03. 2022

약속 손만두

  

오래된 약속을 지켰다. 겨울방학이 돌아올 즈음부터 얘기가 나왔다.

“엄마 우리 방학하면 만두도 만들고 빵도 굽고 그러자.”

두 아이 모두 한결같이 이런 희망을 틈만 나면 얘기했다. 

“응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언제나 난 똑같은 답을 했다. 그때 마음이 정말 그러했는지는 워낙 여러 번 말해서 가물가물하다. 어렴풋이 그려지는 건 힘든 건 아니지만 살짝 귀찮음이 있었다.   

  

시간은 정말 한낮 햇살처럼 빠르게 지났다. 아침에서 낮으로 향할 무렵 맑은 날이면 우리 집 거실에는 따듯한 태양이 가득 들어온다. 그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 순간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금세 사라지는 까닭이다. 겨울방학도 그랬다. 두 달이나 된다고 시간이 정말 많다고 여겼는데 벌써 절반이 다 지나는 중이다. 매일 무언가를 하고 지냈지만 아이들이 얘기했던 건 아직 진행형이거나 계획에도 없다. 핑계처럼 몸이 계속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겨울방학 전후로 2주 이상을 이런 불편함으로 지내다 보니 몸을 움직여하는 일은 억지로라도 잊고 싶었다.     

이제야 조금씩 기운이 나니 몸이 바빠진다. 내일이면 입춘. 겨울의 긴 터널에서 밝은 봄빛이 들어오나 보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만두 만들기에 나섰다.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일인데 서두르지 않으면 방학이 그냥 지나버릴 것 같았다. 그동안은 시판 만두피를 사용했다. 편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 번도 만두피를 만들어 보지 않았기에 낯설었고 시도하는 일에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번엔 제대로 된 손 만두에 도전하기로 했다. 만두피가 시작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만두피 레시피를 대충 살펴보고 나니 그림이 그려졌다. 이번에도 내 식대로 했다. 중력분에 식용유와 물, 계란 하나를 넣어 반죽하고는 3시간을 냉장고에서 숙성시켰다. 반죽은 큰아이가 나섰다. 손목을 무리하면 항상 다음날 탈이 나는 터라 일찌감치 아이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중학생인 아이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반죽한다. 거칠던 밀가루가 한 덩이가 되고 윤기가 흐른다. 아이는 얼마나 힘을 쓰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엄마, 나 잘했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응. 그래, 완전 반죽 잘 되었는데.”

아이 얼굴이 미소가 흐른다. 반죽을 보면 볼수록 흐뭇함이 밀려오는지 꽤 뿌듯한 눈치다. 만두피는 그렇게 아이 손을 통해서 탄생했다. 밀대로 반죽을 밀어서 최대한 얇게 만드는 건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덩이를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며 밀다가 비뚤배뚤 모양이 별로라 다시 방향을 전환했다. 피자 도우를 만들 듯 가능한 큰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서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란 모양을 찍어내었다.      


만두소는 일 년 묵은 김장김치와 고기가 중심인 두 가지 종류로 정했다. 복잡하지 않게 적당히 집에 있는 재료가 중심이다. 고기만두는 돼지고기 간 것과 숙주, 두부와 달큼한 속 배추와 대파를 채 썰어서 함께 버무렸다. 김치만두는 김치와 두부에 고기를 조금 넣었다. 간은 소금과 간장 매실, 참기름이 공통으로 들어갔다. 계량된 레시피가 없으니 손 가는 대로다. 고기를 익히지 않은 까닭에 미리 맛을 볼 수도 없다. 심심하면 간장을 찍을 생각으로 불안함을 잠재웠다.      


만두 만들기는 그동안 간단히 끝났다. 피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소만 준비하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면 한 40여 분 지날 즈음이면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과정이 천천히 진행된다. 만두피가 산처럼 쌓여있지 않기에 아이들은 만들다가 피가 없으면 손을 놓고 쉬어갔다. 밀대를 밀어서 두께를 고르게 하는 작업도 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차분하게 했다. 누구를 대접해야 하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진행속도에 시간을 맡겼다. 그러니 절로 편안하다.     

마트에서 사 온 냉동만두를 먹을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몇천 원을 주면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그것은 햄버거를 먹는 것처럼 맛있게 먹으면서도, 먹고 나서는 별다른 감정이 생기질 않는다. 손에 밀가루를 묻힐 일도 없고 익어가는 몇 분을 기다리면 된다. 오전과 오후의 분수령이 되는 11시 반 무렵부터 시작해 하나둘 늘어간 만두는 이것과 사뭇 달랐다. 찍어내듯 노련한 모양은 아니지만 만든 이의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큰아이는 천천히 꼼꼼하게 움직인 손놀림이 만두 곳곳에 배어 있었고, 작은 아이의 것은 밝은 성격처럼 톡톡 튀는 발랄한 모양이다. 쟁반에 놓인 만두가 늘어갈수록 맛에 대한 기대감은 부풀어 오른다.     


다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어서 먼저 만들어진 것들을 굽기로 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한 불로 익어가는 동안 만두의 겉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느낌적으로 다 익어갈 즈음 녹말가루 한 숟가락을 찬물에 갠 것을 팬에 고루 부었다. 그러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군만두 완성이다.  아이들이 작은 상으로 모여 앉았다. 담백하다. 재료가 무엇하나 먼저 나서지 않는다. 조용한 풀밭을 거니는 듯 편안한 맛이다. 아이들도 밍밍한 듯하면서도 깔끔한 이 맛이 좋다며 다른 것을 찾지 않았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만두는 정겨웠다. 

“엄마, 우리 이거 아껴먹자. 냉동실에 두었다가 다음 주에도 먹고.”

아이들은 직접 만든 음식의 소중함을 말하지 않아도 절로 알아간다. 손을 거치는 음식은 매일 만들기 어렵다는 단순한 사실까지도. 먹는 일에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들은 서둘러 먹는 일에 나서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기 위해 만두를 냉동실에 보관하고 오랫동안 먹기를 바란다. 만두를 다 만들고 나면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더 귀하고 마음이 간다. 누군가는 음식은 기억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만두를 만들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던 추억도 만두 안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둥근 밀가루 반죽에 소를 툭하고 넣고 물을 살짝 묻혀가며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꼭꼭 누르며 모양을 만든다. 이 순간은 진지하고 서두르는 일이 없다. 만두에는 시간의 향기가 머물러 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다시 만두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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