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May 27. 2018

사랑과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것

영화 <케이크 메이커>를 보게 되어 씀


스포일러 포함


독일 남자 사람 제빵사 토마스Thomas와 이스라엘 남자 사람 직장인 오렌Oren이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오렌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오렌에게 연락이 닿질 않아 발만 구르던 토마스는 시간이 꽤 지나서야 이 사망 소식을 접하고, 오렌의 아내 아나트Anat가 카페를 운영하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으로 시작한다.


토마스는 아마도 오렌의 흔적을 더듬고 싶었을 것이다. 그 흔적은 무엇보다도 이제는 미망인이 된 아나트에게 가장 짙게 묻어 있을 터. 토마스는 아나트를 찾아가 그를 고용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오렌의 수영복을 입고 오렌이 다니던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토마스


아나트는 잔심부름이나 시킬 요량으로 토마스를 고용한다. 토마스는 이제 예루살렘에 보다 오래 머물 수 있고, 그래서 보다 오래 오렌의 흔적을 짚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잔심부름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된다. 흡사 이 과정은 그가 오렌의 자리를 채우는 과정인 듯 보이기도 한다. 그는 오렌와 아나트의 아들을 위해 쿠키를 굽고, 케이크를 구워 아나트의 사업을 크게 돕는다. 오렌이 살아 있었더라면 했을법한 일들. 그런 그에게 아나트는 오렌의 옷을 건넨다.


하지만 토마스가 예루살렘에서 빵을 굽는 과정은 오렌의 역할을 얻어가는 과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빵을 굽는 것은 오렌의 일이 아니라, 오렌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자신과 오렌을 이어주었던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아나트에게 건넨다.


토마스는 오렌이 떠나 비어버린 공간에 스스로 들어서는가. 아니면 그 공간을 아나트로 채우는가. 어느 쪽이든 - 꼭 어느 한쪽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 토마스와 아나트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 그는 좋은 뜻으로 구운 쿠키라도 코셔kosher 인증을 받지 못한 것이니 모두 버리라는 말을 듣지만, 나중에는 샤밧Shabbat에 초대받기도 한다. 아나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토마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다. 이내 토마스와 아나트 사이에는 처음엔 없던 기류가 흐른다.


사랑일까? 모를 일이다. 둘은 애무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정작 입맞춤도 하지 않는다. 토마스와 오렌의 키스와는 대조적이다. 그들이 하는 게 정말로 애무이기는 한 것인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것으로 끝을 향해 간다.


사랑, 그리고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것. 오렌의 자리를 채우면서, 오렌의 자리를 마주하는 토마스.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굽는 베를린의 제빵사와 코셔 인증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케이크를 굽는 제빵사. <케이크 메이커>는 어느 한쪽에도 무게를 싣지 않고 덤덤하게 흐르는 영화다.


영화에서 사랑은 단 한 번의 키스로 시작되고,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그것은 끝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흩어진다.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남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그것대로 옳을 것이다. 다만,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는 어떠해야 할 것일까? 키스 아닌 다른 것으로도 사랑을 더 풍성하게 그려 넣고, 당사자들에게는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그것에 대해 뭐든 말해보라 청할 것인가. 어차피 사랑은 어쩌다 해버리는 키스처럼 느닷없고, 어차피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그것은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그것인데.



p.s.

극장에서 나오는 길에 어느 아주머니들이 "다 좋은데 도대체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들었다. 도대체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스크린에 갇힌 적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