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상 Jan 04. 2022

가호 '시작'과 여러 가지 이야기

이태원클라쓰, 솔로지옥, 거북이, 인공지능, 해방촌 맛집 다 나오는 글


13년 전 갑작스럽게 사망한 3인 혼성 그룹 거북이의 터틀맨(임성훈)이 다시 무대에 올라 춤과 노래를 선보인 적 있다. Mnet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한번'이 그의 목소리와 모습을 최신 기술로 복원해 거북이 멤버인 지이와 금비와 합동 무대를 갖게 해 준 것. 가족과 팬들에게 보고 싶은 반가운 얼굴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추는 모습에 사뭇 뭉클하다. 거북이가 부른 곡은 가호 '시작'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느리지 않은 템포에 희망적인 가사를 담았음에도 노래는 애석하게도 너무나 슬프다.


터틀맨은 본인이 살아있었을 시절엔 없었던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고 뒤돌아 어둠으로 사라진다. 살아 돌아와 잠시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것 같은 모습에 눈물을 참기 어렵다.


공대 감성의 산물,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인공지능이 고도화되면서 문명이 경계하는 것들도 생겨났다. 지능화되고 과거엔 없던 새로운 범죄들이다. 혹은 인공지능이 일거수일투족에 침투하면서 반발심이 들거나 개인정보 문제 역시 진지하게 고려할 문제가 됐다. 이렇듯 인공지능이 결부된 범죄와 불의 때문에 공포스러운 면면이 인공지능과 최첨단 기술의 사회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인공지능이 인류에 이롭고 기술 낙관적인 힌트를 역설적이게 휴머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감성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될 것이라고 본다. 없던 범죄가 나타난 것처럼 우리가 가질 수 없던 감동과 기쁨 역시 인공지능으로부터 가능할 것이다. 2008년 떠난 터틀맨이 2020년 티비에 출연해 같은 해 나온 노래를 리메이크 버전으로 부르고 이를 보려고 유튜브에 1000만 명이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가호의 '시작'은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대표하는 OST다. 이 드라마는 인기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돼 여러 패션과 밈을 만들어낸 2020년 최고 흥행 작품이다. 웹툰 특유의 돌발적인 전개와 핍진성 없는 흐름에 종영까지 꾸준히 지켜보지 못했다. 그러나 드라마에 적잖이 괜찮은 미장센이 묻어 있고, 누구나 막연히 이해하고 있는 이태원의 젊음과 감성이  드라마여서 썩 괜찮게 실려 있어 좋은 드라마로 기억한다. 


드라마 방영 한참 전인 이태원과 경리단길 상권이 살 만했던 몇 년 전 단밤 1호점 자리 바로 지척에 있던 바에 갔다. 자그마한 바였는데, 먼저 간 친구가 바 사장님이 예쁘다고 해서 잰걸음에 서둘러 갔던 기억이 있다. 단밤 1호점은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는 녹사평 육교와 이어진 길 끝에 있다. 구 용산 미군부대 쪽으로 높은 빌딩 없이 널찍한 하늘을 마주할 수 있고 주택과 상업지대가 맞닿아 있어 다양한 모습이 숨어있다. 이태원에서 가장 걷고 싶고 기분도 좋아지는 길인데, 이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단밤 1호점 건물이 있다.




드라마 종영까지 함께하지 못해 이태원 근처에 주인공들이 두 번째 가게의 배경이 된 '단밤 2호점'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최근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얼마 전 해방촌에 유명한 수제 햄버거집을 갔다. 남산 둘레를 끌어안듯 뻗은 소월로 바로 앞에 있는 햄버거집은 해방촌에서도 꽤 깊숙이 자리한 편이다. 그 가게를 드나들면서 옆 건물 벽면에 걸린 '단밤'이라는 간판을 봤다. '단밤'이라는 고유명사가 드라마와 웹툰 덕분에 이태원 근처에서 하나의 유명 명사가 되어 대수롭지 않게 걸어둔 간판이라 그다지 유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단밤 2호점'으로 등장했던 건물이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2호점을 맞닥뜨리게 되니 왜인지 '이태원 클라쓰' 마지막화까지 본 느낌이 들었다.



멋쟁이 젊은 남녀들이 무인도에서 짝을 찾는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은 동 플랫폼에서 글로벌 히트를 친 '투 핫'의 한국판으로 관심을 모았다. '투 핫'의 노골적이고 빠꾸 없는 동물적 적나라함은 빠졌지만, '하트 시그널'이나 '환승연애' 등 한국식 연애 예능의 성공 공식인 간질간질함이나 선덕선덕함을 모범적으로 재현해내 아류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여기에 큰 제작비에 힘 입어 무인도와 휴양지를 섞은 기묘한 세트가 등장하고, 호캉스 개간지 플렉스가 엿보이는 천국섬을 곁들여 이젠 피로감이 나올 법도 한 짝짓기 예능의 식상함도 불식했다. 한국 넷플릭스 예능으로 전 세계 순위 10위 안에 들며, 출시 이전 별 볼 일 없을 거 같다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깼다.


남자 출연자 중에서 잘생기고 성격 시원하고 솔직하면서 가장 운동신경이 뛰어난 문세훈이 가장 돋보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꾸준히 관심 표현했던 여성 출연자 신지연이 세훈에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 세훈은 며칠이 되도록 천국도로 데이트 한 번 가지 못해 안타까움을 산다. 그러나 해뜰 날은 온다. 중간 투입된 두 여성 출연자 모두 세훈에 호감을 갖는다. 세훈은 진흙탕 싸움에서 남성 출연자들을 물리치고 여성 출연자를 지목해 천국도로 갈 수 있는 데이트권을 딴다. 

마침내 세훈이 누군가와 진솔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 


에피소드 6 엔딩에서 세훈이 데이트를 함께 갈 사람을 지목하는 장면이 나온다. 긴장된 순간..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이름이 세훈의 입 밖으로 나온다. 복잡 미묘하면서도 민망함도 엿보이면서 거기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세훈이 10초 넘게 클로즈업된다. 동시에 익숙한 전주와 가사가 흘러나온다. 역시 이 노래다. 


'이 노래가 여기 왜 나와도 되는 건가?'싶은 잡념이 들자마자, 곧바로 뜨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제작: JTBC'이 "왜냐면 저작권이 우리꺼거든?"이라고 말해준다. 아, JTBC 이 놈들! 


세훈의 엔딩 클로즈업 장면은 단연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인 편집이었다.




2022년이 시작됐다. 2021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성취와 아픔이 있었는지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 추억하고, 너그러이 잊어야 한다. 


그래도 2022년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펼쳐졌는데, 조금은 동기 부여할 순간은 가져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듣고 되뇌고 싶은 가사기에 이 노래를 다시 꺼낸다.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

모든 걸 이겨낼 것처럼 시간을 뒤쫓는

시곗바늘처럼 앞질러 가고 싶어 하지"

...

"빛나지 않아도 내 꿈을 응원해

그 마지막을 가질 테니

부러진 것처럼 한 발로 뛰어도

난 나의 길을 갈 테니까"

...

"원하는 대로 다 가질 거야

그게 바로 내 꿈일 테니까

변한 건 없어 버티고 버텨

내 꿈은 더 단단해질 테니

다시 시작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