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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Jun 29. 2015

마드리드 우주선을 타다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2014년, 봄


축구앱을 만들고 3년째. 믿기지 않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마드리드 현지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니 잠깐. 아챔도 아니고 호날두가 뛰는 경기를, 레알의 경기를, 게다가 펩의 바이에른 뮌헨을 불러들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전화를 받고도 믿기지 않아 며칠을 속으로 되물었다. 레알?!!


직항임에도 14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시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간 일에 치여 본의 아니게 멀리했던 영화를 왕복하는 동안 7편이나 보게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7시간의 시차도 어차피 한국에선 밤새가며 봤을 경기라 낮밤이 바뀌면 고마운 일이니, 닷새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뭉개고 지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지금 잠이 옵니까! ...라는 각오로 버텼던 것 같다.


호텔의 안내문. 챔스는 새벽에만 봐왔는데... 감동ㅠ


마드리드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톨레도 대성당 투어를 비롯해, 그 즈음 '꽃할배' 어르신들이 훑고 간 곳들을 두루 돌아보고 여러 맛집과 시내구경이 이어졌지만 머리속엔 오로지 챔스 생각 뿐이었다.


마침 일정 중에 같은 마드리드 연고 팀인 AT마드리드의 또 다른 4강 홈 경기(vs 첼시)까지 열리는 상황이라, 두 경기를 모두 직관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까지 더해졌다. 견물생심.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수많은 인파가 저마다 지지팀의 레플리카를 입고 다니는 도심 풍경은 이미 바람든 마음을 한껏 부채질했다.


경기 전부터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



첫인상, 우주선에 들어서는 기분


결국 AT마드리드와 첼시 경기는 표를 구하지 못해 호텔 바에서 봐야했지만, 일행들과의 스코어 내기를 혼자 딴(0:0 무승부였다 -ㅁ-) 덕분에 한국으로 가져갈 선물의 양을 늘릴 수 있었다. 고마워 토레스.


전날 저녁 마신 맥주 맛이 좋아선지, 소지금이 늘어선지. 아무튼 유난히 개운했던 꿀잠 후, 이윽고 대망의 경기일. 우리는 어느새 낯익은 거리를 능숙하게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관광객을 노린 소매치기가 많단 얘기에 크로스백을 철저히 사수하며 지하철로 몇 정거장. 베르나베우 역에 내려 조금 걸으니 그 이름도 찬란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날두가 호우하고 베일이 치달하는 꿈의 구장


건립 당시 구단주의 이름을 붙인 것 뿐인데 뭔가 있어보이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을 배경으로 독사진 한 장 찍을 겨를도 없이 그동안 사진으로만 봤던 기마 경찰과 경찰차, 이미 인산인해를 이룬 축구팬들, 특히 여기저기 험악하게 생긴 축구팬들이 한껏 고조된 어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시끄럽게 뱉어대는 통에 재빨리 오피셜 스토어만 돌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 때 스토어에서 구입한 져지나 악세서리 모두 호텔 앞 멀티샵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경기장 '오피셜 스토어'에서 샀다는 것 자체로 차액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는 기분이었다. 물론 처음이라 그랬지 다음에 또 오면 여기서 절대 안 삽니다 (...)


사진 ⓒ 나이키 풋볼 / FAphotos


검표기를 거쳐 계단을 뛰어 오르니 잠깐의 어둠으로부터 이런 황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려 8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고 챔스 4강전이니 사람 많은 거야 당연하지만, 최대한 경기장에 가까운 구조로 만원 관중을 층층이 쌓아 올린 모습이 주는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꽤 많은 축구 직관 경험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순간은 정말 외계인이 타고온 거대 우주선에 홀로 탑승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질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 안에 들어온 것만으로 인류 역사에 남을 것 같은 그런.


게다가 어렵게 구한 표는 운좋게도 골대 바로 뒤. 그러니까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 공격 상황일 때 중계 카메라에 같이 잡힐 정도의 위치였다. 비록 7명의 일행이 모두 따로따로 흩어져 앉아야 했지만 내 자리는 예를 들면 카시야스가 이렇게 보이는 정도? (자랑)




레알의 선제골, 몰아친 바이에른


덕분에 전반에는 레알의 공격을, 후반에는 바이에른의 공격을 수비하는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두 팀 다 양측면에서 빠르게 돌파해 들어오는 게 무서운 팀이지만, 로벤과 리베리가 부상 없이 모두 뛴 이날의 바이에른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후반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몇 차례 정신 없이 몰아칠 땐 역시 가방에 속옷을 챙겨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광판 시간이 흐르는 게 마냥 아까웠던 경기는 전반 19분, 역습 상황에서 호날두-코엔트랑의 패스를 침착하게 마무리한 벤제마의 선제골이 곧 결승골이 됐다.


거듭 말하지만 자리가 좋았던 덕에 골 장면 직후 카메라에 환호하는 내 모습도 잠깐 찍혀 전세계로 전파를 탔다. 그래서 이 득점 장면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풀HD 화질로 영구소장해둘 정도로 애정하는 영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의 백미는 실점 이후 후반 막판까지 집요하게 몰아친 바이에른의 공격력이었다.


전반 19분, 레알 카림 벤제마 선제 결승골


물론 끝까지 1점을 지켜낸 레알의 수비도, 호날두의 돌파와 점프력과 성질머리도 아직까지 생생할 정도로 멋졌다. 만약 레알이 이 경기를 지켜내지 못했으면 '라 데시마(La Décima, 챔스 10회 우승)' 대업적은 달성치 못했을 거다.


또 당시 허리 부상으로 먹튀 논란까지 일으켰던 베일도 후반 이스코와 교체출전해, 결국 이 경기장에서 내가 보길 원했던 선수는 모두 본 셈이 됐다.


하프타임 먹방. 담배피고 먹고 흘리고 솔직히 난장판


경기가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파 사이로 경기장 안전요원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축구팬이라면 흔히 찍는 경기장 배경의 뻔한 그 사진.


하지만 녀석은 널 찍어주면 다른 사람들도 다 찍어달라고 할 거라서 안 된다며 냉정히 거절했다. 경기장 밖에서도 이렇다할 흔적을 남기지 못한터라 초조해진 내가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찍어보려 바둥거리고 있으니, 그게 또 딱해보였는지 퇴장하는 다른 관객을 연결시켜줘 결국 찍긴 찍었다. 꼬마 아이가 찍은 그 사진은 한창 때의 박문성 해설위원처럼 복스러운 미남형으로 나왔기 때문에 여기 올리긴 그렇고.


대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직접 듣고 담아온 챔스 주제곡 영상을 소개한다.

 

Die Meister / 그 정복자들
Die Besten / 그 최고들
Les Grandes Equipes / 그 위대한 팀들
The Champions! / 챔피언들!


글·사진 - 이동준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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