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소비를 위한 전제, 브랜드의 다양성
2025년 5월 19일 새벽, SPC 제빵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기계에 끼인 채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지난 2년 사이, SPC 계열 공장에서만 세 번째 끼임 사고입니다.
그동안 SPC는 재발 방지를 약속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은 반복되고, 그들이 거듭하여 내보내는 사과문은 점점 형식적인 문장처럼 느껴집니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 안전보다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SPC의 빵을 먹고, 그들이 운영하는 브랜드를 이용합니다. 왜일까요?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SPC는 파리바게뜨, 던킨, 베스킨라빈스, 삼립, 쉐이크쉑 등 B2C, B2B 할 것 없이 수많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이들을 피해 소비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불매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성과 구조의 문제입니다. 피 묻은 빵을 먹고 싶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현실. 그게 지금 우리가 처한 구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업은 가치를 생산하고,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합니다. 즉, 소비란 곧 ‘가치에 대한 동의’이며, 지지입니다. 그렇기에 소비는 곧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돈을 흘려보내는 일.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돈을 쓰는가’를 통해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드러냅니다. 우리가 어떤 기업에 돈을 쓰는가는 단순한 편의,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태도와 철학을 지지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롭게 소비할 수 없습니다. 더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치에 따른 소비가 아닌, 나도 모르게 혹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소비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단지 소비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가치 있는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율의 억압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해답은 ‘브랜드의 다양화’에 있습니다.
단순히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가치와 철학을 담은 브랜드들이 시장 안에서 공존하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조입니다. 민주주의가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데서 시작되듯, 소비의 민주주의도 다양한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시장 환경에서 출발합니다. 다양성이 보장되어, 거대 자본이 아닌 다양한 철학을 가진 브랜드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야말로 우리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이것은 단지 작은 브랜드들을 응원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소비의 방향을 통해 기존 독점 구조에 균열을 내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행동의 시작입니다. 이 과정은 결국 소비자 스스로가 참여하는 변화입니다.
편의만을 좇는 소비에서 한 발 물러나,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그들이 조금씩 늘어날 때, 기업의 권력은 분산되고, 소비자 개개인의 선택은 더 큰 힘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브랜드의 다양화를 위한 움직임은 단순한 상업적 행위를 넘어, 민주적인 사회 구조를 위한 실천이자 연대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기업을 선택하고, 더 많은 브랜드가 설 자리를 만들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피 묻은 빵을 먹지 않을 자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