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7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오래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꺼냅니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자칫 이 글이 샤인 머스캣을 재배하는 농민들과 유통하는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품종의 과일들이 뜨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포도 하나가 시장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샤인머스캣'입니다. 마치 지구상에 있는 포도는 오직 샤인 머스캣 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다른 포도는 올드한 것이 되어버리고 샤인머스캣을 먹어야 힙한 사람인 것처럼 시장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마치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나 자신을 위한 작은 투자처럼 샤인머스캣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소비자들 반응이 좋으니 농민들도 너도 나도 샤인머스캣 재배 열풍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특정 작물에 생산이 늘어났을 때 가격이 폭락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는 제 마음은 위태위태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샤인 머스캣을 재배하시는 농민들이 늘어납니다. 기존 포도밭을 모두 샤인머스캣으로 갱신을 하는 경우가 전국에서 집단적인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샤인머스캣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공사장님 한번 팔아볼 거냐고 연락이 오는 아는 농민들도 하나둘씩 늘어납니다. 도대체 샤인 머스캣이 뭐길래?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생산하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가격이 기존 포도에 비해 월등히 좋기 때문입니다.
© 충청남도 농업기술원
최근 들어 씨가 있는 샤인머스캣을 마케팅 포인트 삼어 판매하는 곳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원래 샤인머스캣이라는 포도에는 씨가 있는 것이 정상이니까요. 지베렐린 처리 기술(?)로 씨를 없애 지금의 샤인머스캣 대 유행을 만든 것을 아마 일반 소비자 분들은 잘 아시지 못할 겁니다.
제가 그동안 샤인머스캣을 판매하지 않은 이유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씨가 있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포도인가?
전 문제의 본질을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습니다.
샤인머스캣의 씨의 유무의 문제. 문제의 본질은 과연 샤인머스캣은 씨가 있어도 매력적인 포도인가?라는 질문인듯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지금처럼 애써 씨를 없앨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샤인머스캣을 Flex 하는 행위 자체가 힙하거나 나만을 위한 소비처럼 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샤인머스캣은 씨가 없는 포도입니다. 그러나 원래 샤인머스캣은 씨가 없지 않습니다. 지베렐린 처리를 통해서 씨를 없애고 있는 건데요. 물론 지베렐린 처리를 한다고 모든 포도가 다 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베렐린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미 '배'의 사례를 통해 언론에서도 많이 다른 이슈입니다. 성장촉진제입니다. 호르몬제라고 할 수 있죠. 지베렐린 처리를 통해 샤인머스캣의 씨를 없애고 포도알을 크게 만듭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 또다시 봉착을 했는데요.
2019년 경상북도 농업기술원은 ‘샤인머스켓’의 국내 재배면적은 2018년 963ha로 포도 총재배 면적의 7.5%를 점유하면서 가파르게 성장하여 포도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 했고,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원예경영 연구과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샤인머스켓의 무핵포도 생산기술은 지베렐린 25ppm과 포클로르페뉴론 5ppm을 혼용하여 꽃이 만개했을 때 1차 처리한 후 10일 후에 지베렐린 25ppm에 티디아주론 2∼3ppm 넣어 화방 전체를 침지하면 포도 알의 모양이 타원형이고 알 크기와 무게가 커면서 씨가 없고 품질이 좋은 과실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피피엠(ppm ; parts per million) : 100만분율. 어떤 양이 전체의 100만 분의 몇을 차지하는가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지베렐린, 포클로르페뉴론, 티디아주론은 그럼 어떤 물질이고 지베렐린 25ppm은 과연 어느 정도의 양일까? 과연 안전한 양인가? 소량이라 인체에 무해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묻고 싶습니다. 진짜 인체에 무해한가? 성장호르몬제임에 분명하고 그로 인해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해서 포도알이 주먹만 해졌는데 말이죠. 실제로 지베렐린 처리를 하지 않은 친환경 샤인머스캣의 포도알은 기형적으로 크지 않습니다.
씨가 없는 샤인머스캣의 본질에 대해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묘목상은 묘목상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유통인은 유통인대로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예견된 일이긴 한데 조기 출하하는 샤인머스캣들이 시장에 깔리기 시작하면서 샤인 머스캣의 품질이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더 이상 샤인머스캣에서 지베렐린 처리로 씨가 없는 샤인 머스캣을 만드는 것은 화두로 꺼내지 않고 유통업체에서는 본인들은 조기 출하하지 않고 제대로 익혀서 출하한다는 콘셉트로 판매를 촉진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국 진짜 꺼내야 할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말이죠.
샤인 머스캣은 과연 씨가 있어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포도로 다가갈 것인가? 저는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