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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un 09. 2015

고요함과 충만함

디지털 속에서 불행한 이유

1950년대에 활동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이 같은 고독감을 ‘군중 속의 고독’이라 칭했고 이 말은 이제 현대의 고독을 뜻한 대표적인 말로 쓰이고 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고도 산업사회를 거치며 점차 외부 지향형이 되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사교성과는 달리 내면적인 고립감 시달려 왔다. 그리고 그 고립감은 수 십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이어져 현대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현대의 개인은 동료, 사회,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현대 도시는 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있는데(사무실, 지하철 역, 학교, 거리), 그 모든 곳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이 아니라 집단 속의 군중이 될 뿐이다. 그리고 고독, 불안감, 죄책감이 일상적으로 개인을 지배하게 된다.


이런 상태임에도 현대인은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고독을 깨닫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완화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 오락들에 의한 규격화된 볼거리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절망감을 깨닫지 못한 채, 끝없이 리모컨을 돌리며 하루를 보내게 만든다. 카우치 포테이토, 즉 소파(카우치)에 앉아 감자칩이나 팝콘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내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의 기술, 사랑의 회복, 사랑의 사회가 절실하다고, 에릭 프롬은 말한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사람들은 홀로 있기와 침묵하기를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까? 파스칼의 “팡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인간이 자기 방에 조용히 머물 수 없다는 단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연약하고 유약한 인간 조건으로 타고난 빈곤으로 너무 비참해서 깊이 생각하면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대신에 자신의 관심을 분산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끄럽고 바쁜 것을 지독히 좋아한다. 그래서 고독의 즐거움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또 다른 은밀한 본능, 원래 좋았던 본성의 잔재가 있어서 실제로 행복이란 바쁜데 있지 않고 오직 안식에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본능이 앞에서 말한 분산 욕구와 충돌하고, 그로 인한 생각의 혼란 때문에 사람들은 흥분 속에서 안식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닥쳐오는 난관을 모두 이겨냄으로써 안식의 문이 열려야만 지금 내게 없는 만족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말들을 쉽게 표현하면 사람들은 안식을 구하면서도 안식을 주는 고독하고 침묵하기를 두려워하고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또 안식을 구하고 있기에 그 바쁜 일들을 빨리 극복하고 그 다음에 안식을 갖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시간이 있으면 다른 바쁜 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나의 선택에 대해서 달린 영적 댓글(?)들


천재란 영원한 인내심이다

- 미켈란젤로


재능이란 대단한 인내심이다

-아날토 프랑스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은 올바르게

계속된 지독한 노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재능은 고요함 속에서 만들어지고, 개성은 언제나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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