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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카 아카이브 Aug 08. 2023

꽃피지 못한 리틀 갤로퍼,
현대 티롤

[아카이브 프로젝트 : 26]

티롤은 미쓰비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개발을 시작한 현대정공의 흔적이다. ⓒ 뉴스투데이

HYUNDAI TIROL

[Archive 026] 1999, Designed by Hyundai. ⓒ Dong Jin Kim


현대정밀공업은 왜 갑자기 '자동차 생산사업부'를 출범한 것일까? 이미 차량 개발 능력과 안정적인 운영이 보장된 현대자동차가 굳건한데 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러한 행보는 불필요한 중복투자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정주영에게는 아들 정몽구가 장차 현대차의 회장이 되기 위한 정치적 명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정주영이 조선과 건설 분야에 주력할 때 그의 동생 정세영은 현대차를 전두지휘하며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주영은 동생에게 기업의 주력 분야인 자동차를 넘길 생각이 없었고, 현대정공을 통해 정몽구의 자동차 사업 경험을 쌓아주려 했다. 정주영의 지지를 업은 현대정공은 미쓰비시의 손을 빌려 갤로퍼와 싼타모를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현대정공이 현대차와 차별화된 'RV 중심 메이커'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거대한 글라스 루프가 적용된 모습. 

머지않아 현대정공은 RV 시장 점유율을 과반 이상으로 점유했다. 시장성에 확신이 선 현대정공은 곧이어 그간 축적해 온 4륜구동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 개발을 시도한다. 그 가운데에는 세계적인 소형 SUV 붐을 의식한 티롤 컨셉트카가 있었다. 티롤은 당시 현대정공에서 개발하던 'G-1'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소형 SUV는 전 세계에 걸쳐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게 되었다. 현대정공은 이러한 흐름을 읽고 자사의 첫 수출전략차로 소형 SUV를 개발한 것이다.


티롤은 도시업무와 레저활동이 동시에 가능한 미니밴-지프 크로스오버를 표방한다. 새시는 승차감을 고려해 아반떼 J1형의 것을 차용했는데, 이는 현대정공이 최초로 모노코크 바디를 사용한 사례였다. 구동계는 전륜 기반의 풀타임 4륜구동으로 2.0리터 (2351CC) 시리우스 가솔린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152마력을 발휘한다.

시야 확보를 위해 스페어타이어를 내린 모습.

티롤은 클램쉘 테일게이트를 적용하여 실용성을 중시하는 SUV의 성격을 지켜냈다. 윈도우 부분은 평범하게 위로 열리지만 그 하단 부분은 차량 좌측에서 여는 방식이다. 갤로퍼의 트렁크 역시 동일하게 우측으로 열리는데, 사실 갤로퍼의 경우는 일본의 좌측통행 기준으로 설계된 파제로를 현지화하면서 생긴 오류로 국내 차주들의 불편함을 자아낸 요소였다. 왜 독자 모델인 티롤까지 개폐 방향을 고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당대 차량들에게는 과분한 크기의 글라스 루프는 이 차량이 상용화를 무시한 컨셉트카임을 보여주는 유일한 부분이다. 실내에는 센터패시아 중앙에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내비게이션과 TV 시청이 가능하다. 

칼럼식 기어를 적용해 승용차의 감각을 살렸다.

동시에 개발된 'HP' 프로젝트 (훗날 테라칸으로 출시)와 달리 티롤은 현대정공이 현대차와 통합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무산된다. 현대차는 왜 티롤을 포기한 것일까? 물론 개발비 삭감, 수익성 미달 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켜있었겠다만, 아마 '싼타페와의 포지션 중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티롤의 제원은 전장 4,500 mm, 전폭 1,800 mm, 전고 1,695 mm, 축거 2,620 mm로 당시 판매되던 싼타페 SM형 (각각 4,500 mm, 1,845 mm, 1,720 mm, 2,630 mm)과 거의 동일한 수치를 가진다. 이미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싼타페의 파이를 나눠 가지면서까지 티롤을 양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무산된 지 25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티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혹시 차량을 보고 싶다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문화회관에 당시 출품된 컨셉트카가 진열되어 있으니 사전 예약 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TIMELINE

1999.05.10~1999.05.18 : 제3회 서울 모터쇼 출품

2000.??.??~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문화회관 전시

현재 소재: 불명


REFERENCE

매일경제 '99서울 모터쇼 차세대 컨셉트카로 첨단경쟁' 1999.05.11

카라이프 '신기술에 비해 디자인 수준 아쉬워 - SUV와 스포츠카가 주도' 1999.06.01

카비전 '국산차만의 잔치, 이번으로 끝내자' 199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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