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잠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가 더 이상은 안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고야 마는 새벽 시간이다.
잠을 자는 게 두렵다.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은 또 어떻게 이 밤을 보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낮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어나 너무나도 맑은 정신에 괴로움을 곱씹다가 다시 잠을 청해 본다. 매일 밤 이런 과정을 서너 번씩 겪다 보니 불면의 밤은 나에게 형벌처럼 느껴진다.
잠을 포기하는 날이 잠을 자려고 애쓰는 날 보다 오히려 덜 괴롭다.
잠을 포기하고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가슴의 답답함을 느껴본다. 그리고는 이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인 키 작은 검정색 스탠드를 먼저 켜고, 건너편 책상 위의 또 다른 흰색 스탠드를 켠 다음, 마지막으로 한 뼘 조금 넘는 하얀색 캔들 워머를 켜서 조명을 밝힌다.
Rain forest.. <비 내리는 숲 속의 향>이라고 내가 이름 붙여준 캔들 향이 조금씩 방안에 퍼져 나간다.
그리고는 스피커를 연결한다.
첫 선곡은 언제나 그렇듯이 Frank Levy의 nocturne 피아노 연주곡이다. 세상을 모르던 시기부터 들어오던 좋아하는 곡이었고, 어두운 시기를 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견뎌냈는데, 이제는 이 음악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어디서 보니 기억이 고통과 같은 강렬한 감정과 결합이 되었을 때, 그 기억은 뇌의 장기 기억 저장소에 영원히 남아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드는 내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망각돼도 그 감정은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다., 매일 동트기 전 새벽 시간에 제일 좋아하는 곡이 잊어버려야 하는 감정의 끄트머리를 또다시 잡아 끌어낸다. 그래도 예전의 후벼 파는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명치끝에 묵직한 덩어리만 느껴지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하면 감정도 따라서 삭제될 걸 확신하면서도, 매일 반복해서 확인하고 복기하고 있는 어리석은 나..
그래서 나의 바닥 감정은 어둡고 축축한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