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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Jul 02. 2015

오고가는 뒷담화

상처받는 아이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공학이다. 남학생들이야 특유의 단순함으로 친구들끼리의 다툼은 금방 해결되는 편이다. 교사인 나 역시 남자이고 그 시기의 남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흐릿한 기억이나마 남아있기에 문제에 개입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다르다.


여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는 네트워크다. 또래집단의 형성이 사춘기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향이 잘못 틀어지고 서서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담임 입장에서는 - 특히 나처럼 여학생에 대한 경험이 적은 젊은 남자교사일수록 - 꽤나 난처하고 어려운 문제가 된다.


고3이라고 예외는 아닌데 그나마 입시라는 대의명분이 있어 1,2학년들처럼 크게 불거지진 않는다. 이미 1학년 때부터 이합집산을 거치며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몇 해 동안 여학생들끼리의 문제로 꽤나 마음이 상했던 나는 늘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그 점을 강조한다.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친해질 필요는 없지만 나와 다르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특히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지말라고.


남교사임에도 내 천성이 그래서인지 유독 아이들의 감정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가 거슬리기 시작하면 그건 분명 '무엇'인가 내게 곧 어려움이 닥치게 된다는 신호다. 특히 어떤 여학생이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누군가 다른 여학생의 표정이 형언하기 힘든 비아냥 서린 표정을 짓고 있다면, 둘이 앙숙일 확률이 거의 백퍼센트다.


문제는 최근의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급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건 대개 여학생들이란 점이다. 목소리 큰 남학생과 목소리 큰 여학생이 한 교실에 있다면 학기초엔 늘 다투지만 곧 남학생의 패배로 귀결된다. 여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남학생들보다 네트워크 관리를 잘한다. 입소문을 만들고 '내 편'을 관리하기에는 남학생들이 대부분 단순한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학생 중에도 교묘히 아이들의 관계를 이용하려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런 건 내가 개입해서 금방 해결이 되는 편이다. 그런 녀석일수록 눈치가 빨라서 담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방 이해하니까.


오늘도 다른 반 여학생이 우리 반 여학생에게 누군가 우리 반 여학생 성격이 되게 못됐다고 했다는 걸 전해주었다. 그걸 알게 된 내가 다른 반 여학생을 바로 그 자리에서 호되게 야단을 쳤다. 그 딴 소리 퍼트리지 말라고. 내일이 시험 시작하는 날인데 뭐하는 거냐고.


자, 이쯤되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죄송합니다,라고 하거나 인사를 꾸벅 하고는 얼른 내 앞에서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삐졌다'. 우리반 학생의 말에 따르면 내가 오히려 그 학생을 혼내는 바람에 자기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거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이 정도 되면 멘붕이 왔을 터. "어쩌라고?"라는 말이 뱅뱅 돌고 "아니 왜 지가 삐지지?"라며 꽤 오래 짜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으레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는 예상도 조금 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여학생들은 감정적이고, 그 감정을 남교사에게 활용하기도 한다는 것.이건 선배 여교사의 조언으로 알게 된, 매우 귀중한 사실이다.


더 중요한 건 그 여학생을 그냥 둘 경우 나와 그 아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늪을 건너야하며 그 학생이 속한 무리와도 나는 결별해야할지도 모른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건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너무 슬픈 일이다. 내일쯤 적절할 때 따로 불러서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네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노라고.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고 누구의 적도 아니라고.


예전에 아이들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할 땐 그저 혼자 괴롭기만 했다. 분명 나랑 친하고 잘 지내는 학생들이 있는데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거의 영원히 등돌려버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조언과 교직에서의 경험이 차차 쌓여가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 땐 내가 잘못했던 것이다. 나는 좀 더 친근하다고 했던 말과 행동들이 그 아이들에게는 다르게 비춰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또래집단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온갖 오해와 불신을 낳으며 학급 분위기를 망가뜨린다.


아이들은 누구나 담임의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좀 더 따뜻한 말 한마디, 좀 더 세심한 배려 하나가 녀석들을 웃게 한다. 너무나 잘 알지만 하루에도 수십번씩 소리치고 야단치고 잔소리하게 되는 나를 반성한다. 모두를 공평히 아껴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잘못된 루머를 퍼트리고 패거리를 나누어 헐뜯는 것이 얼마나 서로의 살을 깎아먹는 일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 담임인 나는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감정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있어야 한다. 아쉬울 때가 많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아쉬운 게 아이들이 아픈 것보단 나으니까. 안그래도 짜증나고 힘든 녀석들인데 담임까지 마음 한 구석을 푹 쑤셔놓는다면 그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험담을 들어도 듣고 지나칠 수 있는 힘, 입이 근질거려도 참을 줄 아는 미덕을 아이들이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와 교사, 그리고 어른들 모두가 함께 도와주어야할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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