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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0. 2015

제법, 괜찮게, 안녕.

잘 살아내고, 잘 떠나 보내는 일이란.



나는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그중 막내 고양이가 잇몸이 심하게 부어올라 약을 먹고 있는데, 여느 고양이가 그렇듯 이 녀석도 약을 엄청 싫어한다. 참치캔에 섞어 줘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억지로 알약을 쑤셔 넣어 봐도 토해내는 데 선수다. 그래서 결국 물에 타 주사기로 먹이는 수밖에 없다. 먹기 싫어서 아등바등 그 녀석도 스트레스, 먹여야만 하는 나도 스트레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잘 살아야지 않겠냐면서 억지로 녀석을  부둥켜안고 그렇게 주사기를 입에 들이밀곤 한다. 조금이라도 잘 먹으려면 잇몸이 건강해야지 않겠냐면서. 저도 몇 번은 게워내더니만 지쳤는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세상에서 제일 못난 표정을 하면서 약을 쩝쩝 삼킨다. 




며칠 전, 친한 언니의 반려견 지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너무나도 건강하고 감당이 안될 만큼 밝고 힘이 좋은 녀석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림프암 진단을 받았고, 단 3주 만에 안녕이라 인사를 고했다. 


지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의연하려 애쓰는 언니도 보고, 마지막 눈 인사라도 꼭 하고 싶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가서 지오를 만나고 왔다. 뭐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건 없고 끙끙 앓다가 개가 먹어도 좋은 음식이 뭔지 찾아보았다.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사람 같은 생각이었지만. 수분 많은 멜론이 괜찮다 해서 멜론 두 통을 사가지고서 지오를 보러 나갔다. 내가 갔을 땐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 때여서 잘 뛰고 잘 먹고 그랬다. 하지만 군데군데 멍자국처럼 종양 덩어리가 있었고, 맑던 눈은 조금 흐릿해져 있었다.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임에도, 잘 견뎌내다가 어느 날 문득, 이른 아침 그 녀석의 숨소리가 얕아지면 소스라치게 놀라 녀석을  끌어안고는 맥을 확인하곤 가슴을 쓸어내렸고, 이내 펑펑 울었다고 했다. 아픈 것이 언니의 잘못이 아님에도 무언가 잘못 챙긴 것 같고, 병원을 너무 자주 데리고 갔나 싶다고, 사소한 것에도 미안했다는 말에 나도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가까운 이를 보내는 마음이란 그런 거지 싶었다.  

아픈 게 분명한데도 지오는 여전히 예뻤다. 밝게 웃었고 애교를 부렸으며 "손" 하면 앞발을 턱 하고 올려주었으니까. 나오는 순간까지도 지오는 잘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후로 딱 3주 정도 지났을 때. 지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다. 

8~9년이면 개 나이에서 그리 젊은 나이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가족의 입장에서야 어디 그렇던가. 암만 배우는 것이 더 많고 사람 나이로 치면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이라 하더라도 처음 부모 자식처럼 애지중지 살아온 사이에서야 같지 않을 터.  

아직도 그 의연하게 일하며 견뎌내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겠어서, 그리고 그런 사람 앞에서 내가 먼저 눈물을 보일까 두려워 전화 한 통 못하고 그저 그리워하는 사진에 좋아요 하나 겨우 눌렀다. 






지오의 죽음은 그간의 생각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부모님도 점점 연세가 지긋해지시고 아프다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괜스레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조금이라도 더 잘 챙겨야지, 하면서도 늘 짐을 두 배쯤 더 지워주는 나라서 죄송한 마음만 가득 이고 결국엔 못난 자식이어서 어떻게 해도 떠난 뒤엔 후회하게 되겠지만, 담담히 최선을 다해 살며 후회가 조금 덜 남도록, 제법 괜찮게 안녕을 고할 날을 준비한다. 

 

다섯 살 찌롱이, 네 살 오름이, 그리고 어느 덧 두 살을 향해 달려가는 방정이를 보면서도 매일 생각한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특별한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에야, 녀석들이 먼저 갈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러니 사는 동안에라도 우리 건강하자고. 맛있는 거 많이 챙겨줄 테니 잘 먹고 재밌게, 안전하게 살다 가자고. 주변 누군가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면 나는 또 괜한 노파심에 우리 고양이 세 마리를 차례로 이리도 만져보고 저리도 만져보며 행여나 증세는 보이지 않는지 확인하며 귀찮게 하겠지만, 부디 너희들이 그 노파심을 조금만 양해해달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헤어짐을 준비하며 만남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누구를 만나든 좀 더 잘 살아내고, 좀 더 잘 보내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해도 이 생에서의 헤어짐은 어쩔 수 없이 힘들 일. 

그러니 우리 이 생을 사는 동안 서로에게 기대어 주어진 삶을 잘 살다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꼭 그러자고. 

되뇌이면서.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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