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다은 Jul 01. 2015

유럽의 땅끝마을, 리스본

노란 전차와 빨간 지붕이 있는 낭만의 도시


오랜 시간을 머금은 리스본 대성당


장난감 같은 노란 전차가 오르내리는 알파마 언덕을 거닐었다. 


언덕 중턱에 위치한 크고 오래된 리스본 대성당을 드나들 때는 시간을 넘나드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성당 안의 차갑고 묵직한 공기는 오랜 시간을 머금고 있다.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던 1755년 대지진을 견디어내고,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건축 양식도 받아들이며 성당은 지금의 근엄한 모습을 갖추었다. 어둑어둑한 성당의 문턱을 나설 때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눈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이 낯설기만 하다.





리스본 어느 언덕에 자리잡은 삶


가파른 언덕을 따라 소박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좁다란 골목 사이사이 집집마다 창문 바깥으로 널어둔 빨래가 펄럭인다. 낡고 해진 아기 옷과 하얀 이불이 따스한 햇볕에 말라 가볍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삐걱거리는 작은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삶, 건너편 구멍가게에서 먹거리를 사다가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 삶, 리스본 어느 언덕에 자리잡은 삶을 그려본다.





집 구경을 하고 빨래 구경을 하며 구불구불한 골목을 돌아 다니다보니 어디를 걷고 있는지 방향 감각이 사라졌다. 길을 잃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는 내게 한 노인이 바닥에 놓인 노면전차의 레일을 가리키며 그것을 따라가라고 손짓을 한다. 오랜 삶의 지혜일까. 노인이 일러준 대로 레일을 따라 걸으면 길을 잃을 일이 없을 것이다. 가끔씩 옷깃을 스칠 것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전차를 피해 골목길 벽에 바짝 붙어야 하겠지만.





리스본의 지붕색 통일법


리스본에는 '지붕색 통일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집들이 하나 같이 예쁜 빨간 기왓장을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이고 있다. 그 소박하고 단정한 지붕 아래 살고 있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윧 없이 정이 들어버릴 것만 같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던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실은 그들처럼 소박하고 단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던 것일까.



다시 노면에 놓인 레일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테주 강을 향해 탁 트인 광장이 나타난다. 산타루치아 전망대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는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 언덕을 오르는 중간중간 테주 강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어찌할 수 없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빨간 지붕들 너머 푸르른 테주 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일렁이는 모습. 마음에 번지는 아련한 위로. 그렇다. 여행은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순간을 얻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이토록 낯설고 먼 곳까지 찾아오게 만든, 그 이유가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와 단정한 빨간 지붕, 그리고 그 너머 반짝이는 테주 강.




이 포스팅은 <올라! 스페인>의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올라! 스페인> 보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타파스 천국, 그라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