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정도가 되면 출세를 위한 줄서기라던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인간관계를 맺을 이유가 줄어든다.
사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관심도 그닥 생기지 않을뿐더러 있는 관계도 가끔은 귀찮아진다.
지금 나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찐으로 나와 맞는 사람일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내가 진정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1. 47년생 정금자,
나의 가장 나이 많은 친구이다. 나이만 생각하면 내게는 엄마뻘이다. 장남인 줄 알고 기대했던 아버지는 금자씨가 달고 태어났어야 할 물건을 찾느라 애쓰다 많이 속상해하셨다고 했다.
이후에 우리의 금자씨는 자라면서 아들처럼 보이려고 늘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고, 사내아이처럼 씩씩하게 바지만 입고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느 아들 부럽지 않게 경영수완을 배웠으며 70년 강남의 개발붐에 힘입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경제적 성공을 이루게 된다.
나와 금자씨는 강남의 한 헬스센터에서 만났다. 아무 말 없이 운동만 하면서 센터만 왔다갔다 하던 나를 두어 달 정도 지켜보다가 어느 날 짧은 커트 머리의 세련된 금자씨가 샤워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기 등 좀 밀어줄래요?’
‘헐, 초면에 이런 걸 부탁한다고?’,
내키지 않았지만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투철한 터라 거절도 못하고 마지못해 그녀의 작은 등을 송월타올로 밀어드렸다. 그러다 그녀의 한쪽 가슴이 절제되어 외 가슴인 것을 발견했다.
‘유방암 수술로 절제를 하셨나 보네.’
짧은 순간 그녀의 아팠을 지난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고, 그녀라는 우주에 그렇게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처음엔 나이가 많으니, 선생님이라고 불러드렸다.
‘어머, 얘 선생님이 뭐니, 선생님이.'
금자씨는 진심으로 그 호칭을 싫어했다.
‘그냥 언니라고 해.’
호칭이란게 참 신기하다. 언니라고 부르니 진짜 큰 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금자 언니의 딸과 내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인데, 그 딸은 나를 보고 또 언니라고 부르니, 이 삼각관계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금자 언니는 나의 친정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픈 것을 아시고는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해 주고, 진짜 엄마처럼 가끔 멸치 조림이며, 파김치 같은 밑반찬을 해주었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 금자씨는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임에도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77세의 나이임에도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예쁜 그녀가 참 좋다.
주름진 그녀의 손이지만 빨갛게 칠한 금자씨의 매니큐어는 늘 섹시하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있지만 정갈한 컷트에 적당한 컬의 머리 스타일은 매력적이다.
남대문에서 쇼핑한다고 하지만 금자씨의 옷차림은 늘 세련되다. 요즘 유행하는 올드머니룩은 그녀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살아온 삶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니 더 멋있어 보이는 것 일게다.
운동복을 입어도 힙하게, 운동화로 포인트를 줄 줄 아는 나의 멋진 언니, 금자씨
그런 금자씨가 어느 여름, 하루해가 길던 날에 맥주 한잔을 하면서 내가 너 나이 때 유방암보다 더 큰 일을 겪었노라며, 술기운으로 고해성사를 했다.
남편이 아는 지인과 외도를 해서 목을 메달고 콱 죽으려 했었다고, 절대로 용서가 안 되었노라고, 가정법원에서 그렇게 기다렸지만 그 과정에서도 남편은 비겁하게 회피했노라며 가슴 속에 묻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살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고, 그러면서 한잔.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도둑놈들이야 욕하면서 또 한잔.
아이들 때문에 이혼도 포기하게 되었다면서 또 한잔.
그리고 또 살다 보니, 그런 일쯤은 별거 아니더라며, 아무것도 아닌 듯 용서 아닌 용서가 되더라며 또 또 한잔.
그날 우리는 맥주를 꽐라가 되도록 마셨고, 나는 그녀를 평생 사랑하리라 이상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안스럽고도 고단한 인생이 내 품에 와서 안겼기 때문이리라.
가끔 남편하고도 이야기가 안 통할 때 나는 나의 금자씨에게 전화한다.
인생의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할지라도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일지라도
나는 그녀가 내 우주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