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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심리학에 속았다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선생님께,


  한국 사회에서의 심리학 열풍이 거셉니다. 최근 주요 대학들에서의 학과 경쟁률을 살펴보면 심리학과는 인문 ‧ 사회과학 분야 최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요 서점들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심리학을 다룬 서적들이 상당합니다. 심리학자 아들러에 관한 서적인 <미움 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저, 전경아 역, 인플루엔셜)가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의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심리학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두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심리학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전국 대학 가운데 심리학과가 개설되지 않은 곳들이 아직 상당하다는 점 등 경영학, 경제학과 같은 유명 학문들에 비해 소위 ‘학문적 인프라’가 부족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은 무척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대중이 그토록 심리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의 장기적 저성장 기조, 늘어나는 가계 부채 및 실업률 등 생계 문제에 대한 온갖 ‘불안’을 조장하는 작금의 현실이 곧 심리학의 열풍을 불러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미래가 어두워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사회라는 것은 쉽게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니 그 변화의 기대를 외부가 아닌 내부로, 즉 자기 자신에게 돌리려는 ‘내(內)귀인적 사고'가 곧 ‘나의 성장’, ‘나의 마음’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고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왜 심리학을 통해 자아를 탐닉하려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같습니다. 한편 심리학의 인기가 그칠 줄 모른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 노력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 사회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갈등 상황에서 내면화되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등 대중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에 대해 심리학이 나름 제 역할을 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즉 심리학자들은 ‘힐링’이라는 최근 사회의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관련 이슈들을 점하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상담심리학, 자기계발의 심리학 관련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왔습니다.           



심리학 열풍의 이면 ① 오직 힐링’ 심리학

  그러나 현재의 대중 심리학이 힐링에만 초점을 맞추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과연 그 방향성이 옳은 것인지 지금 시점에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지속되어 온 심리학의 인기는 심리학 베스트셀러 서적, 심리학과의 높은 경쟁률 등의 사회적 현상들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한국 사회가, 대중들이 원하던 부분을 얼마나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수 있었는지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자살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여전히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행복 지수 역시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학업에 대한 부담, 장기간의 취업 실패로 인한 우울, 그리고 늘어가는 야근으로 인한 피로감 등에 시달릴 때, 심리학 책을 꺼내 읽어보지만 그 달콤한 위로와 현실에 대한 ‘합리화’는 한순간일 뿐, 다음날이 되면 속절없이 또다시 학업에 뛰어들어야 하고, 스펙을 쌓아야 하며, 일터에 나서야 합니다. 즉 우리는 피로한 '현실' 때문에 또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인데, 정작 힐링 심리학은 여기에 대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충고 일색일 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 고통 등에 대해 어르고 달래줄 수 있는 이러한 ‘진통제’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안, 고통의 근원을 없애 힐링 심리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중 심리학은 이 부분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소위 힐링을 자처하는 상담심리학, 임상심리학 등 이외에도 심리학이 우리가 속한 사회에, 정치나 사법 분야에, 산업 전반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심리학에 대해 ‘마음의 진통제’ 그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5년에 있었던 심리학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한국 사람들은 다른 학문 분야들에 비해 심리학에 대해 더 높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었으나 정작 심리학이 사회에 공헌하는 정도는 자연과학 등 타 학문 분야들에 비해 매우 낮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손난희, 김은숙, 2005).

 

  그러나 한 사람의 심리학 전공자로서, 사회에 대한 심리학적인 통찰을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타 학문에서 제기되지 못했던, 심리학만의 사회적 시각을 세상에 더하는 일은 무척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문화(culture)라고 하는 거시적 담론에 대한 심리학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소장, 현재의 한국 사회의 진통들을 청소년들의 사춘기 현상이라는 발달적 맥락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가운데, 그만의 독특한 문화 ‧ 사회심리학적 개념들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허태균 교수 등의 인기는 심리학이 개인을 넘어 조직, 사회, 문화를 다룰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 힘이 충분히 대중들에게도 설득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고무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현상은 사회 내 심리학의 역할 지도가 어떤 변화를 맞게 될 것인지 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결국 대중을 향한 심리학이 언제까지나 개개인에게만 집중하고 더 큰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눈을 돌린다면 지금의 심리학 열풍은 분명 정체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자기계발서, ‘힐링’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을 외면하고 지금같이 한 가지의 역할만 고수한다면 그것은 심리학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심리학 열풍의 이면 ② : ‘퍼다 나르기     

  ‘남편의 키가 크면 아내의 행복감도 높다(Sohn, 2016).'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이 심리학 연구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신기하다는 반응, 왜 그럴까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는 안 그렇던데?’, ‘내가 보기에는 아닌데?’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가령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할수록 타인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라는 연구 결과 등에 대해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반응이 이어집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것 밝힐 거면 뭣 하려 연구를 하는가?’, ‘나도 연구자 할 수 있겠다.’


  사실 일반 대중과 같은 심리학의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인터넷 매체 등에 소개되는 심리학 관련 기사들은 그저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인 인간의 속성과, 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높은 조회 수를 유도해야 하는 국내 언론계의 속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할수록 타인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라는 단 한 줄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인내하는지, 이론 수집과 가설 검증을 위한 실험 설계, 분석, 논문 작성 및 투고의 과정을 또 얼마나 고된지 그 속사정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무척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리학자들의 어려움, 설움을 알아달라는 식의 주장이 아닙니다. 문제는 가십거리로만 반복 재생산되고 소비되는 지금의 행태가 대중들의 순간적인 관심을 사로잡는 데 탁월할지 모르지만, 정작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진정성, 그 깊이를 의심하도록 만든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양상이 지속된다면 그저 재미있으려고, 가벼운 마음에 심리학을 접하면 접했지 심리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는 그런 기대는 가지려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심리학이야말로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본질로 삼는 학문이며 그 누적된 연구 성과들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타 인문학 분야(철학, 역사학, 문학 등) 못지않은 진정성과 깊이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매체에 소개되는 심리학 기사들의 행간에는 감추어진 심리학자들의 노고가 있다는 사실을 심리학자 본인들이 직접 대중에 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당연하다'거나, ‘그런 건 나도 하겠다’는 반응으로 보답받는 것에 대해 그 자신들의 입장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심리학을 연구하는 ‘생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A 하면 B 하다’라는 연구 결과가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 그렇던데?’라는 반박으로는 연구 결과를 절대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그것이 왜 그러한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심리학 하는 진짜 재미’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극적인 한두 줄로 재포장하여 연구자의 정신적 노고의 산물인 연구 결과들을 축소하여 퍼다 나르는 일들이 파다한지라, 대중들은 그 ‘심리학 하는 진짜 재미’를 맛볼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시중에 나와 있는 힐링을 소재로 하지 않는 심리학 서적들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단지 심리학 관련 유명한 저널들에서 발표된 영어 논문들을 번역하고 단순히 요약해서 짜깁기해놓은 수준에 불과하므로 소개된 연구 하나하나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이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리가 없습니다. 


  ‘심리학에서 사랑을 연구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심리학자들의 대다수가 매개, 조절 변인 등이 없는 연구를 생각조차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왜 대중심리학에서는 이에 대한 부분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가?’, ‘심리학 연구를 비판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심리학 연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가?’,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와 같은 가설을 검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의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등에 대해 대중들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아름답고도 치밀한 연구 설계로, 때로는 치밀한 고민으로 인간과 인간 심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연구 논문들인데 그 맥락들이 모두 잘려나가고 오직 ‘껍데기’만이 심리학이라는 간판을 내 걸고 대중을 만난다는 것은 심리학자들에게도, 대중에게도 무척 불행한 일입니다. 이에 따라 대중에게 ‘심리학자의 눈’을 전해야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매체들에 난무하는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어떻게 하면 오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여 나의 삶을 이롭게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을지, 심리학 지식을 ‘퍼다 나르는’ 자들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등 그야말로 ‘심리학 이해를 위한 가이드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즉 단지 심리학의 소비자가 되어 일방적으로 수용만 하는 입장을 넘어, ‘심리학 생산자의 시각’을 통해 주체적으로 심리학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끝으로 드리는 말씀

  현재의 심리학 열풍을 지속시키기 위해, 심리학 담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힐링’ 일변도의 심리학이 근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역으로 10년 이상이나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이 누적되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힐링’이라는 심리학 기존의 역할에 더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심리학의 다른 영역들이 이제 대중을 만나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힐링에만 치우친 심리학이 왜 결국 정체될 수밖에 없는지를 성찰해야 하며, 더 나아가 오로지 ‘개인’에게만 집중하는 것 같았던 심리학이 ‘학교’, ‘직장’에 대해, ‘정치’에 대해, ‘경제’에 대해, ‘사회 전반’에 대해 어떤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기존 심리학 담론들은 지나치게 피상적입니다. 지나치게 축소되고 자극적으로 편집된 심리학 연구 결과들은 대중들에게 가십거리로만 순간적으로 소모되고 말 뿐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심리학에 대한 오해와 불신,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남기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심리학이 ‘낭비’되는 것은 심리학자, 대중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기에, 대중들이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심리학에 대한 심리학’, ‘심리학에 대한 가이드북’을 겨냥하는 형태의 담론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최근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적어 나간 글들을 묶어 책 한 권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얄팍하여 부끄럽지만, 나름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들을 약소하게나마 정돈하여 바깥에 내어 놓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답을 내고자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운을 떼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쪼록 이 작은 결과물이 전하는 문제의식들이 살아남아,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 생각들을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과 언젠가 직접 만나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하십시오.


2017. 07. 19.

허용회 올림.









 2017년 8월 초,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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