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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May 18. 2017

목공방 이야기

목공방 섭외까지는 성공했으나 동네가게와 동네주민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싶은 큰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단순히 둘을 연결하고 땡! 할 수는 없는 노릇. 가게와 주민 간에 화학작용을 일으킬 윤활유인 콘텐츠를 발굴해야 했다. 가게에 담겨있는 보석같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 위해 다시 목공방을 찾았다.


다시 찾은 노마드 목공방. 목수님은 작품 활동에 열중해 있던터라 약간 신경이 예민한 상태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흥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의미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고맙죠"

"메일로 드렸던 대략적인 개요는 보셨죠? 어떠세요?"

 일정, 모객인원, 진행 순서 등의 아주 간단한 행사 개요를 메일로 먼저 드렸더랬다.

" 총 진행시간을 1시간으로 잡으셨던데 좀 부족할 것 같아요. 더 길게 해도 되나요?"

제일 애매했던 부분이 진행시간였다. 목수님께서 얼마나 길게 얘기하실지 몰랐고 이에 대해 주민들과의 대화시간이 얼마나 유지될까 감이 없었기에 강연 30분에 Q&A 30분으로 잡았더랬다. 근데 부족해 보였나보다.

" 물론이죠~ 저는 너무 길게 시간을 잡으면 강연하시는 목수님 입장에서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서요."

30분 이상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 전할 이야기는 많습니다. "

라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일에 별 흥미를 못느꼈던 제가 목수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우연한 기회에 접한 목공예를 통해 만드는 희열에 빠지게 되었죠. 원래 신문기자, 파일럿 등 다양한 일들을 해왔는데 목공예를 처음 접한 순간 이것이 나의 업이다. 느꼈습니다. 이런 목공예의 매력을 많은 이들에게 너무나 전하고 싶어요."

그리하야 특강의 제목은 '목공예의 매력'으로 정해졌고, 목공방을 차리게 된 창업 스토리와 왜 연희동에 터를 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일반인들에게 목공예의 매력을 알리는 쪽으로 가닥를 잡았다.


강연 콘텐츠 외에도 이벤트에 참여하는 실질적인 혜택도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노쇼 방지 차원에서 참석자들에게 일정액의 입장료를 받을 생각였기에 그에 상응하거나 상회하는 선물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목수님께 말씀드렸다. 취지에 동의해 주셨고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선물을 주셨다. 도마 만들기 1일 클래스 50% 할인권. 원래 5만원짜리 수업을 3만원에 진행하겠다고 해주셨는데 내가 좀더 할인해서 반값으로 파격적으로 어필하자고 졸랐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홍보 페이지가 완성되었다.




이제 모객할 차례. 동네 주민들이 참석하는 것이 본 행사의 취지이기에 연희동 마을 계획단원들 중에서 목공예에 관심있는 분들을 모시기로 했다. 마을 계획단의 각종 챗방에 홍보페이지를 올렸다. 직접 올리기도 하고 참여하지 않은 챗방에 올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예상보다 반응은 빨리 왔다. 이틀만에 준비한 8석이 완판되었다. 뒤늦게 행사 공지를 보신 주민분이 따로 연락을 해서 추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좌석까지 추가했다. 프로젝트 기획단계에서 가게 사장님들의 니즈는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주민들의 반응은 긴가민가했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치는 요즘, 동네가게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까? 싶었다. 근데 이런 반응을 보니 동네가게 프로젝트가 잘 돌아갈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주민들의 반응에 목수님도 고무된 듯 했다.


그렇게 예정된 날이 밝았다. 평일 저녁으로 일정이 잡혀 서둘러 퇴근해서 부랴부랴 집정리를 하고 거실을 특강 구조로 변경했다. 이제 하도 여러 번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15분이면 거실이 강연장으로 변신한다. 먼저 목수님께서 도착하셔서 간단히 발표 자료를 검토하시며 거실을 둘러보셨다. 책장 한켠을 가리키시며 "이쪽에 있는 책들의 대부분이 제가 가진 책들과 같아서 놀랐어요. 건축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죠?" 은재형이 그린팩토리 기획 업무를 하며 읽었던 책들였다. "같이 사는 형이 공간 기획일을 하면서 보던 책들이에요~" 라 답하니 "목공예도 작은 건축이여서 건축에 대한 영감이 목공예에 많은 도움이 되요" 라신다. 저 문장은 새겨 두었다가 나중에 써먹어야지 싶던 찰나 1층의 몽글이가 짖는다. 참석자분들이 도착하신 모양이다.



참석자분들의 평균 연령은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행사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아무래도 목공예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연령대가 높은 탓이다. 이전에 젊은 친구들이 왔을 때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왠지 모르게 안정감이 있고 유했으며 호스트 입장에서는 편안했다. 거실을 둘러보던 참석자께서 묻는다. "이곳이 목공방 사무실인가 보죠?" 헛.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뇨. 여기는 제 집이에요." 라고 답하자 "아~ 전 목공방에서 진행하는 걸로 이해했거든요." 라신다. 그랬더니 옆에 계신 다른 참석자께서도 거든다. "전 사실 아까 노마드 목공방까지 갔다가 잠겨 있길래 목수님께 연락해서 여기로 찾아왔어요." 아... 홍보 페이지에 아무런 코멘트없이 장소를 우리집 주소로 적은 게 화근였다. 나중에 설문조사로 확인해 보니 참석자의 80%가 목공방에서 진행하는 걸로 이해했더랬다. 아무래도 동네가게 특강이라는 기존에 없던 콘텐츠를 어필하려다 보니 남의 집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별도로 소개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둘다 새로운 개념이다 보니 이를 한데 어우르는 게 쉽지는 않다.


목수님의 특강은 목공예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가구를 주문하러 목공방에 들렀다가 그 곳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목수가 되었다고 하셨다. 지금의 본인을 부르는 호칭 중에 목수를 제일 좋아하신다는 변상원 목수. 줄여서 변목이라고도 불리신단다. 그는 본인의 작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교육에 관심이 많다. "목수일을 정말 힘들게 배웠어요. 당시에 국내 목수분들은 각자 특화된 영역들에 전문화 되어 있어서 이를 포괄적으로 배우기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더군요. 그래서 전 나중에 누군가 가르칠 위치에 서게 된다면 체계적으로 하자고 마음먹었죠."



변상원 목수가 추구하는 가구의 본질은 미와 실용사이에서 외줄타기 중였다. "언제부턴가 '미'의 반대말이 '추'가 아니라 '실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특히나 가구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것일 수록 더하죠." 그럼에도 본인은 쓸모를 더욱더 강조한다고 했다. 남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해 가구로 재탄생시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충격을 준 일들이 있었고 그것이 내가 처음 목공방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였다고 했다.


무슨 일인고 하니, 마을 계획단분들과 노마드 목공방에 처음 놀러갔을 때 한분이 폐목공을 모아둔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집어들더니 "어! 이거 명함꽂이 하면 되겠네!" 라며 신나서 보여주셨다. 목공예 수강생들이 톱질을 연습하는 목자재였다. 수강생들이 한거라 위아래로 톱질이 삐뚤빼뚤하게 되어 있긴 했는데 그런데로 명함꽂이로 쓸만해 보여서 나를 포함해서 다른 분들도 그 비닐봉지에서 여러 개 챙기며 "목수님 이거 저희 가져가도 되죠?" 라고 선조치 후보고를 했더랬다. 그게 목수님에겐 올해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라고 회고를 했다. "그렇게 쓸모를 강조하던 저에게도 죽은 나무토막으로 보였던 것을 이분들이 살려주신 거에요. 아직 나는 멀었구나 싶었죠."


목수님에게 충격을 준 그 명함꽂이


강연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자연스레 참가자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다. 어디에 사는지 어떤 계기로 참석하게 되었는지 등등. 얘기를 나누어 보니 다들 목공예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으나 어떻게 시작할지, 본인이 해볼만한 건지 몰라서 확인차 참석하신 듯 했다. 그리고 이미 목수님의 특강에 도취되어 하기로 마음먹은 분이 대부분였다. 


특강 참석의 특전이 목공예 수업 중 하나인 도마 만들기 1일 과정 50% 할인였다. 다들 목공예의 매력에 푹 빠진터라 하루라도 빨리 수업을 듣고 싶어 스케줄 조정하며 조를 짜서 수입 일정까지 한큐에 정했다. 도마 수업에 참석할 때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숙제가 있다. 바로 도마 디자인을 그려오는 것. 디자인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고 본인이 만들어 보고 싶은 도마를 메모지에라도 그려오는 것이다. 목수님 왈 본인이 만들고 싶은 걸 구상하고 그걸 목공으로 다듬어 나갈 수 없을지 가늠해 보는 것부터가 목공예의 시작이라 한다. 


도마 이야기를 하며 목수님이 무언가 퀴즈를 내셨다. (독자분들께 송구하오나 어떤 퀴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퀴즈를 맞추신 참석자분께 선물이 증정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목수님이 손수 제작하신 도마! 게다가 목수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티치가 가미된 독특한 도마였다. 선물을 증정하며 목수님이 "원래 아무도 퀴즈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남의 집 프로젝트 기획자분께 선물로 드리려 했는데. 허허허" 라신다. 2개를 가져오셔도 되는데요ToT


도마를 득한 주민과 그를 부러워 하는 주민들.


이미 예정된 시간을 넘겨 저녁 10시가 되어도 이야기 꽃이 그칠 새 없이 서로의 목공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자연스레 가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만들고 싶은 가구에 대해 조언을 구하며 그렇게 연희동의 밤이 깊어갔다. 이전에 멘토링을 할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때는 참석자들간의 대화가 그렇게 많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참가자들간에 왕성한 커뮤니케이션이 오간다. 밤에 진행한 탓일까? 아니면 연령대 높으신 분들 특유의 안정감에서 오는 분위기가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된 걸까?


늦은 밤에 남의 집에 둘러앉아 목공예라는 주제로 모인 이들을 보니 반상회의 기억과 비교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 따라갔던 반상회에서 느꼈던 낯섬과 산만함. 당시 아주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어찌나 중구난방이던지. 한데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전부 남남들일진데 같은 관심사로 모여 있고 게다가 전문가가 직접 강연하며 질문에 답변까지 해주니 참으로 알찼다. (고 기획자가 직접 말하긴 뭐하지만) 겉은 반상회인데, 속은 TED랄까?




목수님은 이번 특강을 만족스러워 하시는 듯 했다. 나나 목수님이나 처음 기획할 때는 2~3명만 모여도 괜찮다 했지만 실제로 남의 집 거실에 가득찬 이들과 교감하는 목수님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과 이를 전해 듣는 동네 주민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으니 규모는 중요하지 않구나 느꼈다. 그러면 뭣이 중한가? 그건 동네 주민들이라는 타겟이 주는 친밀함일 수도 있고, 목공방이라는 명확한 주제가 끌어당기는 매력일 수도 있고, (가장 바라건대) 남의 집이라는 공간의 마력일 수도 있다.


남의 집 동네가게를 기획할 때는 가게라는 콘텐츠를 집이라는 프레임에 넣는 것이 억지스럽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한데 막상 부딪혀 보니 집이라는 공간을 내 경험에 비추어 한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는 비단 특강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게 주인장분들과 이야기나누고 섭외하는 과정에서 더더욱 실감하고 체득하고 있다. 나에게 집은 거실이지만 누군가에게 집은 그들이 일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앞으론 더 많은 남의 집들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끄집어 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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