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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 나 -1

왜 한국은 침묵하는 조폭 사회인가?

by Younggi Seo

도스토옙스키를 안 것은 15여 년 전이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E. H. Carr의 카가 이 ‘카'인가 싶어서 지금 들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평전’을 보는데, 도스토옙스키가 어디서 많이 본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소했다.



그런 대목을 언급하기에 앞서, 앞으로 여덟 개의 챕터들과 두 개의 개인 수기(6장, 10장)로 해당 제목의 글의 시리즈를 연재할 필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겠다.



도스토옙스키가 소설에서 보인 인간 내면의 심리 묘사를 통해 나의 행동심리의 이면을 캐내고자 하며, 이를 통해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에서의 그녀(가족이 만든 정신질환자)처럼 ‘동정심’과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플랫폼으로써의 현재 교육의 대안을 알리는 데 글을 쓰는 동기가 있다. 고상한 느낌이 든다면, 다시 말해 암묵적인 조폭 문화의 토대를 심어주는 대한민국의 학교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또한 군대 다음으로 사고의 개화가 뒤떨어지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가 2007년도에 방한했을 때,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5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허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었고 13년이 지난 지금의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도 변한 것은 없다.



도스토옙스키, 이 작자의 이름을 완전히 부를 수 있는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한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그때로부터 15년 이상이 흘렀다. 그의 이름은 러시아의 대문호라 하면 바로 튀어나오는 톨스토이와 견주어 보아도 너무 낯설었다. 더군다나 이름 자체도 처음에 잘못 읊조린 습관 때문에, 도스가 아니라 ‘도예스톱스키’로 잘못 부르곤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각인하기 위해 썼던 트리거*가 처음 '도'를 말할 때, 옛날 윈도 운영체제가 나오기 전에 빌 게이츠가 만든 MS-'도스'를 연상시켜 읊조리는 거였다. 그래서 이제야 그를 ‘죄와 벌’의 저자 ‘누구’라고 호명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나고 내가 그에 대해서 차츰차츰 알게 되었을 때, 때마침 작가 이지성 씨가 그의 책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필요로 하는 철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만간 ‘죄와 벌’을 한 번 볼 계획을 갖고 있었다. 왜 하필 ‘죄와 벌’을 보고 그런 궁상을 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찾은 서점의 한 구석에서 그를 언급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각 학문의 분야를 그와 연관시켜 논평 논문집으로 엮은 케임브리지 대학 추천 도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다시 볼 때도 그랬듯이 해당 작가의 프로파일이나 배경지식에 대해 먼저 환기하고 본소설을 보는 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스토옙스키도 그의 주변부부터 탐색했다.



이번 챕터에서의 결론은 만약 내가 러시아의 한 문예 모임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누구죠?"라고 묻는다면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는 충분히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다. 다행히 이제야 그를 왜 19세기, ‘신은 죽었다.’라고까지 천명하고도 현대에서 천재 철학자로 추앙받는 니체가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무언가를 배운 유일한 심리학자이다.”라고 말할 정도인지 알게 되었다. 혹자는 아직 MS-DOS의 ‘도스’로 시작되는 이 작가를 모른다면, 이제부터 본인이 그를 알려드리면서 내 할 얘기를 할 테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다.




* 트리거 : 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 용어이자, IT 데이터베이스에서 쓰이는 용어,

트리거(Trigger)는 어느 특정한 동작에 반응해 자동으로 필요한 동작을 실행하는 것을 뜻함.



참조

1) E.H. 카, 도스또예프스키 평전, 권영빈 역, 서울: 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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