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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n 13. 2021

위로가 되는 위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2년 동안 거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함께했던 사람이라 노트북, 신발, 칫솔 등등 내 주위 모든 것이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 속에 홀로 남아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어느 특정 사람과의 이별보다 더 못 견디겠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상태가 그러하니 친한 동료들은 나의 평소와 다른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모습도,  생기를 잃은 잿빛 얼굴도 오늘내일 안에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남친 없음’이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 헤어졌다고 말을 하고 친구의 눈을 마주친 순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Maddy는 꼭 안아주며 말했다.


We love you.


 ‘더 좋은 남자 만날 거야.’라든가, ‘세상에 남자는 많아.’라든가, ‘잘 된 거야.’가 아니었다.

내 상황을 잘 알고, 나와 얼마나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서 흔히 기대하고 흔히 들었던 위로가 아니었다.

깊은 얘기를 털어놓은 것도 아니고 헤어졌다는 딱 한마디 했을 뿐인데 이 외딴 섬나라에 와서 매일매일을 누군가와 함께하다가 하루아침에 혈혈단신이 됐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에게, 나를 여전히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나보다 두 달 먼저 이별을 경험한 그녀가 말해준 것이다.




위로라고 해서 손잡아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만이 위로가 아니었다.

학교 수업 중에 프레젠테이션은 거의 매 과목마다 빠지지 않는 과제였다. 크고 작은 발표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욕심이 있어서 인지 그나마 욕심을 낼만한 과제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프레젠테이션은 아쉬움을 남겼다. 어김없이 내일이면 남들은 기억도 못할 실수들을 하고 상심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나의 등을 두드리며 Barbara는 말했다.


Let’s go for lunch.


 ‘그만하면 잘했어.’, ‘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등 내가 하고 있는 걱정에 대한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지만 별 일 아니고픈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한 말이었다.  허기지면 더 우울해지는 나를 잘 아는 친구의 말이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는데 위로가 참 어려운 거였다.

힘내.

다 잘될 거야.

밑도 끝도 없고 성의마저 없는 이 대표 응원구호들은 한동안 왠지 모르게 (이제 그만해 나까지 우울해져라며 ) 입막음용으로 사용되는 거 같이 느껴졌다가 또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 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힘이 나기도 하고 잘 될 거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위로 다운 위로를 한 적이 있었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정작 친구는 줄어드는데 주위에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정 욕구나, 관심받고 싶은 욕구들이 일상생활에 여기저기 치이기 바빠 채워질 길이 없으니 갈망만 깊어지는 모양이다.


사촌 동생과 밤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아쉬움들이 오고 갔는데 우리 엄마, 너네 엄마, 할머니, 삼촌, 형제자매 모두 인정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다.

나 같다.


어디선가 내가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라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바로 진정한 위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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