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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n 07. 2021

주급 살이 호주대학교 만학도의 등록금 폭탄의 공포


현지에서 경험하고 있는 바로는, 자국민들에게만 후한 호주에서 유학생들의 역할은 학교 안팎으로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국제 학생들이 자국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남아있는 중국인들은 여전히 명품 매장에 줄을 세우고, 비싼 외제차를 튜닝해서 몰고 다니며 다양한 외식과 쇼핑으로 많은 일자리를 유지하게 하며 호주를 먹여 살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들보다는 미미하지만 그 외 각자의 사정에 따라 호주에 남은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도 숨만 쉬어도 소비로 직결되는 임시 비자 소지자로서 호주 침체된 경제 활동에 손을 보태고 있는 중이다.


내가 공부한 호텔 경영학의 경우, 유학생은 호주 국적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의 세 배 가량을 더 내고 수업을 듣는다. 이마저도 호주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로 지급이 가능하고 또 졸업 후 일정 연봉을 넘지 않으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업을 듣다 보면 한 과목의 통과 grade 인 4점을 못 넘고 낙제하는 호주 학생들은 꽤 흔할뿐더러 한 과목을 세, 네 번 듣는 호주 학생들도 꽤 많았다.  

호주 대학교 GPA 통과 기준


심지어 한 과목을 4번째 듣고 있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저 세상 쿨함에 내가 리액션 버퍼링이 나서 난감했던 순간도 있었을 정도...  한 과목당 3~4백만 원을 왔다 갔다 하는 수업료는 내야 하는, 고득점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한 번에 끝내고자 하는 게 목표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물론 두각을 나타내는 똑똑이 호주 학생들도 많이 있긴 있다.  그래서 어딜 가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해…




다시 찾은 스무 살…



나는 애초부터 만학도 주제에 책을 씹어 먹을 각오는커녕,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 듯한 주제넘은 망상에 사로 잡혀 있기도 했고 일단 첫 학기 오리엔테이션 때, 나에게 주어진 방대한 과제들과 시험들을 설명 들으며 고득점은 깔끔하게 포기, 그냥 한국에서 못해 본 대학 생활을 만끽하며 한 번에 졸업을 목표로 세웠었다.  



그래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에는 다양한 국적의 수백 명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을 둘러보며 그 안에 있는 나를 느끼며 혼자 흐뭇해하기도 하고 소규모 세미나에서 질문하나 하고 엄청 뿌듯해하기도 했었드랬지...







그것이 내가 이 나이에 그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니는 낙이었는데 코로나가 다 앗아가 버렸지 모야…

 

 

그러고 나서 진행된 온라인 수업은 사실상 수업의 질도 떨어졌고, 눈 비비고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듣는 수업은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과제들과 수업은 그렇다 쳐도 온라인으로 진행된 중간고사, 기말고사들은 매번 규칙과 시간이 달라져서 혼선을 주기도 했다. 이를 테면, 코로나 터지고 처음 본 시험은 평소 시험과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으나 그 이후부터는 '본의 아닌' 오픈 북 시험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시험 시간을 대폭 축소시키기도 하고, 어떤 과목은 아예 ‘뒤로 가기’도 안되게 해 놔서 보자마자 답을 작성해서 넘어가면 다시 검토를 할 수 없게 하기도 하였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바로바로 답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게 양질의 갑질(?)을 고민 중이던 교수들의 설명.

(호주 대학교는 대체로 한 과목당 기본 2000자 이상 되는 다양한 과제가 많게는 4~5개에서 적게는 2~3개 정도 제출하게 되고 중간, 기말고사를 보게 되는데 이 과제들과 두 시험들의 점수의 합계가 50% 이상이 되면 과목을 통과하게 된다. )



이 혼돈의 시간 속 교수진들의 실험실 쥐가 된 기분으로 다양한 시험 룰을 경험하며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 도중 나의 대학생활 중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그 수업은 일단 첫 수업 때부터 교수진들부터 마음에 안 들었었다. 매주 해야 하는 과제와 쪽지 시험이 너무 많고 매시간 발표하는 만큼 참여도 점수를 부여해서 나 같이 부끄럼쟁이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더니 과제마다 점수는 또 엄청 짜게 줬다. 그리고 중간고사 때  short answer(주관식) 부문에서 4문제라고 해놓고선 한 문제당 작은 문제를 3~4개씩 딸려 놓고서는 각 문항마다 200자 이상씩 쓰게 해서 사실상 문제는 12 개 이상 2400자를 한 시간 반 만에 적어 내야 하는 시험도 있었다. 한국어도 시험이라고 하면 생각이 잘 안나는 데 영어로 그러고 있자니 아주 겨우 겨우 가까스로 각 과제와 중간고사를 통과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시험을 보기 전 교수님이 처음에 창에 나타나 있는 multiple choice (객관식) 시험을 45분 동안 먼저 풀고 나면 그 이후에 short answer(주관식) 문제들이 보일 거라고 했었다. 그걸 염두하고 문제를 클릭했는데 웬걸, 내 눈앞에 주관식 문제가 떡 하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중간고사 때 교수진들의 장난질(?)로 인해 시간이 모자라 똥줄 탔던 나로서는 배점이 큰 주관식을 두고 그냥 막판에 대충 찍어 시간을 벌 수 있는 객관식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앞서 시험 시작 전 전자 서명할 때 있었던 기술적 오류로 인해 뜻밖의 고득점 기회가 주어진 거라 판단, 주관식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룰루랄라 주관식을 풀고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남겨두고 객관식 문제로 넘어간 순간,  나는 인간의 몸이 땀으로 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에 속옷까지 모두 젖어 버릴 수 있다는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었다.

주관식을 마치고 객관식 문제로 넘어가려고 문제지 창으로 돌아가니 객관식 문항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교수진들은 우리에게 안내하지 않고 순서만 알려줬으나 시험이 시작하고 45분 뒤에 객관식 문제를 사라지게 시스템을 설정해 두었던 것. 이 상황에서 이 과목을 통과를 하게 하려면 주관식을 다 맞아야 하는데 일단 그럴 일이 만무했다.



재수강 등록금 어떻게 마련하지…



초침 없는 시계에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중에 가장 먼저, 가장 큰 두려움은 등록금이었다. 생각해보니 재수강으로 인한 등록금도 등록금인데 비자 연장도 해야 하고 그러면 건강검진이며 큰돈 들어갈 곳이 한 두 군데 아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모니터도 보이지 않은 채로 교수님께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자세한 상황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머릿속도 하얘지고 손도 떨려서 영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마음에 번역기도 돌려가며 우여곡절 끝에 메일을 보내고 교수님께 당연한 핀잔을 들으며 결국 남은 시험 시간 안에 객관식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뜻밖의 인체의 신비와 살아있는 지옥을 한 순간에 경험하고 간신히 과목 통과를 하고 나니, ‘그래도 나를 한 번에 졸업은 하게 해 주시려는 하늘의 뜻이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아주 일시적인 부지런 해짐이긴 했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미리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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