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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Nov 06. 2018

정재승 박사의 《열두 발자국》을 읽고..

하나의 거대한 숲과도 같은 방대한 책. <열두 발자국>

국내 인기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을 꼽으라면 곧장 나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등 수많은 저서와 강연, 2009년에는 다보스포럼에서 '차세대 글로벌 리더'에 선정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과학자로 알려진 '정재승 박사'다. 그는 <알쓸신잡>에 출연 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국민 과학자'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도 한때 과학을 좋아했던 사람 중 하나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공식과 난해한 문장들로 인해 나는 어느 순간 과학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랬던 내가 과학이란 분야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책,《열두 발자국》덕분이다. 그만큼 이 책은 나 같은 소위 '과알못'도 금세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 열 두 차례의 강의 내용을 그대로 풀어냈기에 더 쉽게 느껴지는 거 같다.



* 프롤로그
* 1부 -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뇌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
* 2부 -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뇌과학에서 미래의 기회를 발견하다)
* 부록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우선 프롤로그를 보면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이란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 분야로만 한정 짓긴 참 애매하다. 심리학, 혁명, 우주, 4차 산업 등 방대한 지식들이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1부에서는 뇌에서 벌어지는 일, 결정장애(후회), 욕망, 놀이, 새로고침, 미신에 대한 생각을 과학적으로 다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만한 일들을 정리해놨는데, 특히 이 중에서 나는 '후회'에 대해 다룬 부분에 큰 위로를 얻었다. 살면서 후회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가끔 '그때 왜 그랬지'라고 생각하며 후회한다. 하지만 정재승 박사는 이를 당연하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을 리셋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후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망은 뭔가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그 예측 결과가 실제 결과와 비슷한지 아닌지를 비교하는 능력 때문에 얻게 되는 고통입니다.(…) A를 선택해놓고선 B를 선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 다음에 그때 예상되는 결과와 내 현실을 비교해서 내 현실이 그보다 못하면 느끼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 후회인 겁니다." - p146~148


오히려 그는 후회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이어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건, 저 같은 뇌과학자에게는 '나는 내 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표현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성찰하며 점점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적절한 태도이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는 태도가 적절한 건 아닙니다." - p148


나 또한 잦은 후회로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온 기억이 있다. 이는 일종의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프로게이머를 하다 보니 모든 순간이 '시뮬레이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통해 나는 이 또한 능력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 후회를 안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말처럼 '점점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이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이어 2부에서는 인공지능, 4차 산업, 블록체인, 도전, 우주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정말 많은 부분이 공감 갔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혁명'에 대해 다룬 이야기가 특히 와 닿았다.


"우리는 좀 더 큰 기계(대기업)에 좀 더 오랫동안 안정적인 부속품이 되기를 꿈꾸는 소시민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교양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었던 대학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언제든지 기업에 투입할 수 있는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대학의 존재가치는 스스로 생각하는 지성인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 취직을 할 수 있는 노동자를 키우는 것에 있습니다." - p291,292


어디선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근대 교육을 '포드식 공장'에 비유했다는 글을 봤다. 학교가 산업주의 사회의 획일성, 직선적인 관리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정재승 박사도 정확히 꼬집는다. 


이는 내가 약 3년 여간 청년 단체를 운영하며 몸소 느낀 사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백 여명의 청년들이 단체를 거쳐갔는데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청년보다, 주어진 무언가를 꾸미는 데에 익숙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 10년간 여러분이 비즈니스 영역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단어들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세요. 수평, 공유, 개방, 놀이, 의식의 확장 같은, 예전에는 한 번도 비즈스에서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입니다.(…)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 p 296,297


마지막 문장을 나는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 수많은 회의론자들이 열정을 가진 실천가들을 비아냥거리며 본인의 나태함을 정당화시키는 모습을 자주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열정가들 덕분에 사회는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조금만 세상을 내다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더 이상 소수의 지배가 아닌 다수의 상생, 즉 '다양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부록 <리더의 덕목> 中

끝으로.. 그는 '자기 객관화'가 인간 최고의 덕목이며, 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을 남긴다. 이에 특히나 크게 공감했다. 이 책은 마치 거대한 숲처럼 워낙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기에 도저히 다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살면서 수도 없이 꺼내보게 될 책 중 하나인 거 같다.



# 마치며..


여담이지만 재작년쯤, 일주일여간의 환경 투어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이미 스타덤(?)에 오른 그였지만, 나의 하찮고 쓸데없는 질문 공세에도 흔쾌히 대답해주신 모습이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에게 '뇌고픔(왜 인간은 배고픔만 느끼고, 뇌고픔은 모두가 느끼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해맑게 웃으시며 이런 답변을 남기셨다. 


"그걸 Need For Cognition(인지적 욕구)이라고도 하죠." 


Need For Cognition이라.. 그의 인지 욕구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정재승 박사가 하나의 거대한 숲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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