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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Apr 18. 2018

[황희두의 G-피플]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2편

 나의 스승, 나의 은인 채현국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연락을 못 받아서 제가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혹시 바쁘셔서 전화를 못 받으시면 꼭 다시 나에게 전화를 주시고는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분의 연세가 여든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고작 이십 대 후반 풋내기인 나에게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만큼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몸에 배신 분이다. 바로 '꼰대 할배' 채현국 선생님의 이야기다.


사실 워낙 바쁘신 분이기에 내 연락을 못 받았다고 전혀 미안해하실 필요도 없고

한참 어린 나에게 존댓말을 하실 필요도 없다.


선생님께선 나와 수십 번을 만났지만 여전히 말씀을 놓지 않으신다.

다짜고짜 말부터 놓는 선배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우리 사회 속에서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다.


언젠가는, 종로의 한 찻집에서 오랜만에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중

그를 알아본 수많은 어르신들이 너도나도 본인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채현국 선생님께선 정중히 거절하시며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지금 앞에 있는 청년하고 선약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조금 있다가 다 끝나면 갈세."


그러고도 한참을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사람 간의 약속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살면서 이런 분을 만나 인생을 배운 것은 너무나 큰 영광이다.


사실 존중과 약속의 중요성보다 더 크게 변화한 것이 있다. 바로 돈에 대한 집착이다.

약 4년 전, 프로게이머 은퇴 후 아무 계획 없이 빈둥거리면서 부자를 꿈꾸던 나는

아버지의 소개로 우연히 채현국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뵐 수 있었다. 그 후 돈만 좇던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했다. 짧은 만남 속에서 깊은 인생의 철학을 배웠기에.


채현국 선생님께선 수십 년 전 세금 납부 2위까지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버셨던 분이다. 계열사도 수십 개를 운영하시며 어느 순간 '돈 버는 재미'를 느끼셨다고 한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은 찰나, 독재 정권이 들어선 후 조공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자 이에 심한 부조리를 느끼시고는

과감히 모든 재산을 직원들에게 나눠주시며 회사를 하루아침에 정리하셨다.


게다가 본인 몫으로 얼마 남지 않은 돈은 민주화운동을 하시던 분들의 집까지 지어주셨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까지 되셨다고 하니, 최근 '물 뿌리기' 갑질로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모 항공 전무와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모습이다.


나는 항상 생각해본다.

과연 내가 채현국 선생님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세금 납부 2위 할 정도로 돈을 벌었더라도 과감하게 모든 걸 정리하고는

목숨까지 내놓고 민주화 운동하시던 분들을 도울 수 있었을까? 과연 나의 정의감이 탐욕을 이길 수 있었을까?


막연한 상상만으로는 나도, 누구도 쉽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정의를 택할 것이라고.

하지만 절대 이 같은 행동을 쉽사리 실천하긴 어렵다.


물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돈을 아예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모든 게 돈으로 이어지니까.

그렇다고 돈만 생각하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

모든 게 돈으로만 이어지니까.

그렇기에 '갑질'을 당연시 여기는 조씨 일가 같은 괴물 재벌이 탄생하는 것이다.


언젠가 채현국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돈 버는 게 어떻게 인생의 의미이고 목적이 되겠습니까. 돈이란 놈도 버는 맛을 느끼면 쉽게 헤어 나오질 못합니다"

 

돈에 울고 웃는 이 순간,

돈 앞에 무릎 꿇고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이 나의 인생의 전부인지,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것인지.

어릴 적 너무나도 순수했던 그 시절

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절

나의 행복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언젠가부터 인생의 목표와 의미가 전부 돈으로 연결되었기에

인생이 서서히 불행해진 것은 아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돈이 최고의 행복은 아닌 거 같다.

그렇기에 채현국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 은인과도 같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의 모습에 크게 감명받은 덕분에 나도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말을 놓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도 품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스승, 나의 은인

채현국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꼰대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전화를 끊으실 때마다,

"오늘도 힘차게 달려봅시다!"를 연신 외치시는

그를 보면 매번 힘이 불끈 솟아난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열심히 달리고 계실 것이다.

특유의 해맑은 미소와 긍정의 에너지를 퍼뜨리며.


꼰대라는 단어가 유일하게 아름다운 그를 보며,

내일도 힘찬 하루를 보내야겠다.

"쓴 맛이 사는 맛"이라는 그의 말씀을 가슴에 고이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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