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도 황희두 May 21. 2018

[황희두 에세이]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

절대 눈치 잘보고 비워 잘 맞춰주는 것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

우리는 대부분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마냥 생각처럼 돌아가지는 않는다. 학창 시절에 절대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니 절대 보편적으로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사회생활이기에 처음 사회에 진출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멘붕에 빠진다.

어린 시절 나는 프로게이머를 꿈꾸며 17살이란 나이에 아마추어 합숙소에서 단체생활을 시작했다. 첫 사회생활을 그때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합숙을 하다 보니 나이가 많은 형들 앞에서 개인적인 감정 따위 챙길 겨를도 없었. 심지어 내가 생활하던 그 숙소에는 정상인보 비정상인이 훨씬 많았기에 말 그대로 카오스였다. 나는 그 혼돈 속에서 사회를 배워갔다.

 

어떤 형은 새벽마다 술을 마시고 와서 자고 있는 동생들을 괴롭히기도 했고,

어떤 정신 나간 형은 한 달간 안 씻어서 새까매진 발바닥 사이를 긁어보라 시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산 사나이"를 외치면서 소주병을 들고 동생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도 나는 저항 한 번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다들 그걸 견뎌내는 게 올바른 사회생활이라고 말을 해왔으니까, 나도 그게 정답인 줄만 알았으니까.


언젠가 참다못해 어떤 형에게 한 번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정작 용기를 낸 나에게 돌아온 것은 싸가지없다는 비난과 손가이었다. 부조리에 맞서 싸운 대가는 문제아라는 꼬리표뿐. 그 이후로 나는 정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감정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부조리한 사회 분위기에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까 그 이상한 형이 이제 사회생활 좀 하네", "성격이 좋아진 거 같네" 이런 을 해주면 그저 좋다고 웃던 나였다. 비정상적인 그 형에게 내가 완벽히 길들여진 것이다. 말 그대로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지 못한 채 적응해버린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저항하면 할수록 더 피곤해지니까.

당시에 나는 이렇게 감정을 숨기고 비위를 맞춰주는 행동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무렵 나와 동갑인 친구가 한 명 들어왔다.

형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대꾸조차 안 하던 한 친구. 어느 순간에는 주먹다짐까지 갈뻔할 정도로 저항하던 그 친구. 처음엔 친구인 나조차 무척 거슬렸다. 왜 저렇게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까.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 형들은 그 친구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 친구가 정말 안타까웠다. 무시를 당하니까.

그래서 형들은 나랑만 친하게 놀았다. 뭘하든 나에게만 관심을 줬고, 가끔 과하게 장난을 치더라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애정의 표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이런 애정의 표현조차 못 받는 걸 보며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성숙한 사회를 경험하다 보니 불쌍한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 나도 알았던 거 같다. 다만 스스로 아닐꺼야라며 애써 위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튼 그렇게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사회로 나온 당시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생활 잘하는 것은 남 눈치 잘 보고 감정을 최대한 잘 숨기며 비위를 잘 맞춰주는 사람이다.


사회활동을 하며 만난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매사에 제멋대로였다. 자기 기분이 안 내키면 위아래 없이 막말을 일삼고, 막상 본인한테 그렇게 대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기죽여놓는 스타일. 즉 내로남불의 전형이었다.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 정말 개판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나 싫었지만, 한 편으로는 부러움도 생겨났다.
내가 똑같이 행동하면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고,
그 친구는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면 쿨하고 당찬 사람이라 봐주는 아이러니한 상황.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열 번 잘해주던 사람이 한 번 못하면 나쁜 사람이 되지만,
열 번 못하던 사람이 한 번 잘하면 알고 보니 착한 사람이 되는 현상.

이 말처럼 처음부터 자기주장을 잘 하고 권리를 챙기는 사람들은 당장은 미움을 받을지라도, 어느 순간 조금만 잘해줘도 남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애초에 감정을 잘 숨겼던 사람은 어느 순간 한 번만 화를 내도 "쟤 갑자기 왜 저래?"같은 냉소적인 시선을 받는다.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회생활 잘하는 게 남 비위 잘 맞춰주는 거는 아닌 거 같다. 물론 그 사람처럼 막말을 내뱉는 거도 아닌 거 같다. 이와중에 하나 배운 것은 적어도 저 사람은 괜히 나처럼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저 사람이 부럽다.
어차피 이래 욕먹나, 저래 욕먹나 한다면

차라리 귀막고 그 사람처럼 속편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처럼 욕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도,
아무 말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분을 삭이는 나를 마주할 때만큼은.


매거진의 이전글 [황희두 에세이] 모든 게 부러운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