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현 Oct 30. 2024

가정폭력의 상처 (4), 자살할 바엔 패륜을

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자존심은 하늘 같았지만, 자존감은 낮았다. 낮은 자존감은 직장을 잃으면서 더욱 낮아졌다.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뒷받침해 줄 경제력을 잃자 망가진 자존감은 열등감이 되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직장을 구했고, 어머니가 담당했던 나의 통학은 아버지가 맡게 되었다.   


2시간 가량 단둘이 이동하는 차 안은 살얼음판이었다. 일상적인 행동과 말에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조금이라도 심기에 거슬리면 "나를 무시하냐"면서 폭력을 휘둘렀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위험하게 끌어내려져 폭행을 당했던 것도 드물지 않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가는 차 안, 아버지는 개돼지들이 즐비한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지각색 늘여놓았다. 듣던 내가 자연스레 드는 의문과 반박을 던졌을 때 이루어지는 폭력은 특히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비로소 나 자신을 '결백'하다고 말할 수 있는 데에도 쏟아지는 과한 폭력에 억울함이 북받쳤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폭력 앞에는 눈물로 비는 수밖에 없으니 남은 것은 굴종과 치욕이었다.


비슷한 사건들이 쌓여갔다. 폭력의 현장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한 채 당사자들의 이야기만 전해 들은 어머니와 손위형제가 내놓은 답은 '양비론'이었다.


둘 다 잘못했네, 네가 공손했어야지-

가장 사랑하던 두 사람이 방관자로 전락하는 순간, 참을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자해를 시작했다.


이때 자해는 풀지 못한 분노를 내 몸에 해소했을 뿐이었다. 수치와 울분이 쌓여가는 그 수많은 순간, 나는 자살을 꿈꾸지 않았다. 누구 좋으라고 죽는단 말인가.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고, 죽는다고 억울함이 풀리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 잘난 자존심을 짓밟아 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도 더 좋은 곳을 나오고, 장학금 받아서 당당하게 연을 끊어야지- 하면서.


이를 갈며 세웠던 목표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 휘청거릴 때도 있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어쩌지? 그때는 정말 어찌할 수 없이 절망스러울 것 같은데.

 그때는... 그때는 내가 먼저 죽여버릴거야.

정말이나는 호승심과 오기 하나로 살았다.



살아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정폭력의 상처 (3), 수구꼴통에서 빨갱이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