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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24. 2018

미지의 세계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기에, 인간이다.

영화 <퍼스트맨>으로 진중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이미언 셔젤

‘우리는 1960년대 내로 달에 갈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  존 F. 케네디 -


극의 도입부, X-15 실험기 파일럿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분)은 초음속 비행 도중 우주의 경계에 다다른다. 어두컴컴한 폐쇄 조종석 위 작은 창문으로 비치는 영롱한 세계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경이를 선물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후 그곳은 매분, 매초 생존과 망각의 선택을 강요하는 처절한 사투의 현장으로 돌변한다. 미지의 영역, 도전의 공간, 그 속의 나약하고 긴박한 인간의 표정을 카메라는 집요히 클로즈업한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무던한 현실과 원대한 이상 속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왔다. <위플래쉬>에선 전설의 드러머를 동경하는 어린 뮤지션에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고도 악독한 멘토를 붙여 광기의 천재성을 피웠고, <라라랜드>는 오색찬란한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추억을 빌려 무채색 현실 속 ‘꿈꾸는 바보들’에게 일말의 희망과 체념을 안겼다. 경제 호황과 타락의 기조 아래 희미해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나서던 <위대한 개츠비> 속 개츠비처럼, 셔젤은 정보와 보편의 시대서 낭만으로 치부되는 위대한 업적과 원대한 이상을 좇는다.

<퍼스트맨>의 시선 역시 그렇다. 극 중의 닐 암스트롱은 좀체 표정 변화가 없다. 시종 그의 얼굴을 핸드헬드로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는 사소한 눈빛과 입꼬리 하나하나를 스크린에 투영하지만, 각종 사고와 심리적 압박에도 암스트롱은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그의 감정이 직접 투영되는 장면은 극 초반 아끼던 딸 캐런의 장례식 날 오열하는 모습뿐이다. 그리고 불확실과 위험으로 가득한 ‘제미니 계획’의 우주인 프로젝트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숱한 의문과 상처 속에도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영화는 ‘왜 우리가 달에 가야 했나’를 애써 묻지 않는다. 1960년대 미소간의 치열한 냉전과 우주 경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달에 우주인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달을 정복하지 않아도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기기 위한 8년간의 프로젝트에 자그마치 1100억 달러가 투입됐고, 아폴로 1호의 비극적 폭발 사고 이외에도 숱한 생명이 사라져갔다. 게다가 미국은 베트남의 수렁에 빠져있었다. 논리적 귀결대로라면 달에 갈 이유는 상징적 의미 그 이상을 찾기 어려웠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닐 암스트롱, 그리고 그의 동료 비행사들만이 도전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매일 강도 높은 훈련과 치열한 학업의 일상이 이어진다. 당시로는 첨단 과학의 결정체였던 우주선은 아이폰 1세대만도 못한 원시적인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셔젤의 시선은 전의 두 작품과 달리 정적이고 차분하다. 난제와 비극, 절망 속에도 암스트롱은 자신을 정신적으로 지탱하는 카렌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수행하며, 전진한다. 실패와 고독, 조롱에 흔들리면서도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짐을 챙겨 NASA로 출근한다. 그의 가족이 짊어져야 할 공포와 고뇌는 ‘큰 도전이 될 것’이라 그를 격려하던 아내 재닛마저도 상실을 두려워하며 분노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이성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기술의 성취 아래 감춰진 인간의 굳건한 의지, 그것이 우리를 기어코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들이게 한다.

이처럼 <퍼스트맨>은 진보적인듯하나 셔젤의 고전적 시각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팔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좁디좁은 우주선의 모습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달의 ‘거대한 황무지’의 극명 대비,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현실적 고뇌를 그려낸 모습은 그간의 우주 영화가 담지 못했던 시선이다.



반면 순진할 정도로 꿈과 도전에 시선을 맞추며 마침내 벅찬 성과를 끌어내는 이야기 전개와 작법은 이미 전작들에서 보인 바 있던 감독의 동경과 지향점을 암시한다. 배경 음악 파트너 저스틴 허위츠의 클래식한 사운드트랙 위에서의 항해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여러 지점과 겹쳐 보이는 것도 의도적이다.

<위플래쉬>의 극렬한 긴장과 <라라랜드>의 꿈꾸는 낭만에 <퍼스트맨>은 차분한 관찰과 뚝심을 추가한다. 감각적인 작법 대신 다큐멘터리와 닮은 체험 위주의 관찰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셔젤의 커리어에서 가장 덜 흥미롭지만, 가장 선명한 주제 의식을 진중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논리와 이성, 현실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인간의 묵묵한 전진에 이유와 당위는 무의미하다.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아득히 넘어서는 위대한 도전과 정신의 세계, 그것이 ‘한 인간에게는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을 만들어냈다. <퍼스트맨>은 그 ‘최초의 남자’에게 바치는 장엄한 헌사다.




* <라라랜드> : 라 라 랜드, Someone In The Crowd

* <위플래쉬> : 욕망과 비극, 차가운 드럼 소리의 ‘위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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