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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y 08. 2024

시어머니는 코스 요리가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이야~~ god를 아십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렇게 센스 있는 딸이나 며느리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다정하고 내심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중요한 날을 챙긴다거나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면에서는 센스가 부족하다.


이쪽 방면에서는 남편이 나보다 훨씬 낫다. 용건이 없으면 자주 연락하지 않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단순히 안부를 묻거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양가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저녁에 산책을 하다가 개구리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장모님께 보내더라. 이렇게 살가운 남편 덕분에 종종 내 점수가 깎이긴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니 고마울 따름!




오늘은 어버이날. 며칠 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깜박했기에, '어버이날에는 기필코 오전에 인사드려야지'라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딴짓하다가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난 또 어버이날임을 까먹고 있었다.


카톡!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아, 결혼기념일에 봤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모티콘이 어버이날에 재등장했다. 이런 무심한 딸이여. 잽싸게 전화를 해서 능청을 떨며 말했다.


"아유, 인사하려고 했지~~~ 뭐 좀 하느라 잠깐 정신이 없었슈."


"나참~~ㅋㅋㅋㅋ 어버이날에 내가 전화하라고 해야 됨?"


"아니지, 아니지. 내가 해야지. 하려고 했다니깐!"


엄마는 쿨한 편이라 이런 일로 마음 상하는 일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섭섭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는 통화 내내 애교 섞인 목소리를 장착했다. 엄마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어버이의 은혜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 열심히 얘기를 하... 지 않고 주식 얘기만 실컷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제 어머님께 전화드릴 타이밍. 나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어머님께 전화드릴 일이 거의 없다. 남편이 종종 부모님께 전화를 거는데 그때 스피커폰으로 나도 같이 얘기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통화하면 되는데 왜 스피커폰으로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남편의 배려였다. 이럴 때 같이 얘기하면 내가 굳이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되니까. 센스 있는 남편.


나는 한껏 간드러진 목소리로 어머님께 인사를 했다.


"어머님~~ 어버이날이라 인사드리려고요!" (약간 >_< 이런 느낌)


"아, 그래~? 하하, 고마워."


"뭐 하고 계세요!?"


"나 지금 공원 산책하고 있어."


"오오, 지금 날씨 진짜 좋죠?"


"응, 너무 좋아. 한 바퀴 돌고 들어가려구."


시부모님은 주말마다 등산을 하시고 평소에 산책도 자주 하신다.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크~~ 진짜 건강한 취미예요. 오늘 미세먼지도 없던데. 저도 이따가 나가서 산책해야겠어요."


"그래그래, 그리고 주말에 밥 산다고? 에이, 비싼 거 안 먹어도 돼."


어버이날을 맞아 이번 주말에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중식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대접할 생각이다.


"안 비싸요! 아버님 중식 좋아하시잖아요. 코스라서 어머님이 좋아하실만한 것도 많이 나올 거예요."


"코스 말고~~ 비싼 거 먹지 말고 그냥 식사 하나씩 시켜서 먹자. 아버님은 짬뽕 좋아하셔. 짬뽕이나 짜장면 시키면 될 것 같은데?"


"짬뽕이랑 짜장면도 끝에 나와요."


"괜히 돈 쓰지 말어. 친정 어른들이나 맛있는 거 사드려. 우리한텐 정말 안 해도 돼."


어머니는 연신 거절하시며, 친정 어른들을 챙기라고 하셨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똑같이 소중한 부모님이니까. 남편을 낳아주셨으니 시부모님은 나에게 은인이다. 그래도 맛있는 것을 사드려야 한다고 어버버버하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한 마디 더 덧붙이셨다.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생각을 해봐. 너네는 양쪽을 다 챙겨야 하는데 얼마나 힘드니."


윽, 여기서 가슴이 찡. 양가 부모님을 다 챙겨야 하는 자식의 입장을 이렇게 역지사지로 이해해 주는 시어머니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안 힘들어요! 당연히 해야죠."


"다 챙기려면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아. 그런 부담 느끼지 마. 나도 예전에 다 해봐서 안다."


"큭큭, 누구나 다 겪는 거죠. 전혀 부담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




시어머니와 통화가 끝날 때쯤, 갑자기 코 끝이 시큰해진다. 감사함이 몰려온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스 요리는 싫다고 하셨는데 더 좋은 코스 요리를 대접하고 싶어진다.


친정 부모님도 시댁 어른들도, 우리에게 최대한 부담을 안 주려고 하신다. 너네만 잘 살아도 된다고 하신다. 양가 부모님의 배려가 있어 나와 남편이 지금처럼 편하게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가 어떻든 어버이의 사랑은 끝이 없구나. 그 사랑 안에서, 30대 어른이는 오늘도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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