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그러니까 이것은 아이와 함께한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다.
밥벌이로 오랫동안 기획을 해온 나는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조금은 변태스럽지만 무언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에 희열을 느낀다. 사회학을 공부해서 세상에 관심이 많은 데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툭하면 기획을 해댄다.
그렇다고 오지랖이 넓은 건 아니다. 내향형이라 나의 기획들은 보통 공상에서 끝나거나, 대부분은 노트북 어딘가에 잠들어있다. 대신 소소하게 개인적인 도전 같은 걸 즐기는데, ‘하루 만 보 걷기’나 ‘매일 일기 쓰기’ 같은 아주 작고 평범한 루틴을 목표로 삼고 지내곤 한다.
프로젝트를 몹시도 좋아하는 나는 매일의 ‘투두리스트’ 외에도 월 단위나 연 단위로도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컨대 일 년 동안 책 100권을 읽는다거나, 매달 봉사나 기부를 한다거나, 분기나 반기마다 여행을 다닌다거나, 주말농장에서 키운 채소로 김장을 직접 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매년 마지막 날 다음 해 계획을 세울 때 새해 다이어리에 리스트를 적는 것으로 시작된다. 위에 언급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매년 갱신되는 것들로 대부분 10년쯤 넘게 이어오고 있다.
안 해본 것 해보기.
올해의 목표로 ‘안 해본 것 해보기’를 끼워 넣었다. 이미 나는 휴직 중이라 지난 6개월 안 해본 것들의 연속인 삶을 살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안 해본 것 해보기’를 목표로 삼으면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데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서 계획으로 추가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방학 기간 온종일 아이와 붙어 있게 되었다. 이 또한 안 해본 것 중 하나다. 일을 하느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한 번도 방학 내내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아이는 늘 부모가 없는 방학의 공백을 다른 것들로 메꿨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꼬박 붙어 있다 보니 내 아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어린이인지 처음 알았다. 처음엔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가, 난청이 생길 것 같다가, 이젠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이런 진귀한 경험을 하다 보니 이 시간을 더 드라마틱하게 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천년고찰에서 108배를 하겠다는 이 원대한 계획은 사실 굉장히 즉흥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어쩌다 보니 절에 가 108배를 하게 되었고, 말만 들어도 다리가 후들거려 못할 것 같던 것을 해냈고, 하필 108배를 한 절이 천년고찰이었고, 우연히 다음날 다른 천년고찰을 방문하게 됐고, 거기서 또 108배를 해봤는데 또 해냈고, 그러다 보니 ‘어라? 할만한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천년고찰을 다니며 108배나 해볼까 하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니 방학 동안 매일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필요 없어졌다. 지도 앱에 찍어둔 여러 천년고찰 가운데 오늘은 어디를 가서 108배를 할지 목적지를 정하고 동선을 짜기만 하면 됐다.
혹시 천년고찰이 너무 희귀해서 천년고찰 대신 사찰로 바꾸어야 잠시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엔 천년고찰이 많았다.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틈이 날 때마다 지역명과 천년고찰의 조합으로 천년고찰을 검색해서 부지런히 지도에 옮겨두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가 함께한 천년고찰은 서른 곳에 달한다. 만으로 아홉 살인 아이와 서른 개의 천년고찰을 들르는데 꼬박 한 달 반이 걸렸다. 아이는 겨울 방학으로, 나는 휴직으로 평일에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덕이다.
아이는 108배를 제법 잘한다. 오히려 나보다 힘에 부쳐하지 않는다. 처음 108배를 시작했을 때 엄두가 나지 않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는데, 하다 보니 어떤 날엔 천년고찰 네 곳에서 108배를 하기도 했다. 이제 하루 천년고찰 두 군데쯤 들르는 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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