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엄마랑 학원 그만두고 한 달만 놀러 다니지 않을래?”
무릇 어린이라면 누가 들어도 솔깃할만한 내 제안에 아이는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고 놀러 다니자니. 청천벽력 같은 제안이라 고민스러운가 보다. 나는 아직 학습에 관한 사교육은 시키지 않는다. 아이는 피아노와 미술, 야구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놀러 다니듯 학원에 간다.
난감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빤히 보고도 모른 척 채근한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엄마랑 이렇게 매일매일 놀러 다니겠냐며 아이를 꾀어낸다. 엄마의 감언이설에 설득당한 아이는 그럼 딱 한 달 만이라고 못을 박는다.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다닐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환장의 짝꿍’이 되었다.
누군가 초등 3학년 겨울 방학은 중요하다 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기가 자녀교육의 향방을 결정하는 출발선 같은 거라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은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 이런저런 공부하는 학원에 보내 선행을 시킨다는데 나는 그나마 아이가 취미로 다니던 학원을 모두 멈추고 매일매일 아이와 놀러 다녔다.
방학 기간 주변 친구들은 어느덧 유행처럼 번진 한달살이나 스쿨링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 반년 전 휴직을 결정하고서 아이에게 어쩌면 다시없을 이 기회에 어디든 새로운 곳에서 한동안 지내보면 어떻겠느냐 의중을 떠본 적이 있다. 아이는 싫다고 했다.
집을 몹시도 좋아하는 아이는 해외살이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심지어 싫어한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금송아지를 감춰둔 것도 아니고 고양이 같은 영역 동물도 아닌데 집을 떠나는 걸 영 내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당일치기 혹은 1박 정도 짧은 여행으로 천년고찰에 108배를 다니기로 했다. 엉뚱하지만 꽤 근사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살기나 스쿨링 경험을 하는 또래들은 많겠지만 천년고찰에 108배하러 다니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냐 싶어서.
처음 목표는 1년에 10개의 천년고찰에서 108배를 하는 것이었다. 보름 만에 목표에 도달했다. 목표를 정하고 마음을 먹으니, 생각보다 쉽게 달성했다. 천년고찰 10개에서 30개로 목표를 수정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또다시 수정한 목표에 도달했다. 일 년쯤 걸릴 줄 알았는데, 우리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가 보다. 아이도 나도 생각보다 추진력이 좋았던지 일 년 치 목표를 한 달 반 만에 끝냈다. 회사로 따지면 한 해의 KPI를 아직 1분기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조기 달성한 셈이다.
우리는 추진력만 좋은 게 아니었다. 열정도 넘치고 생각보다 체력도 좋았다. 아이도 나도 서로의 잠재력에 놀랐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내친김에 프로젝트 목표를 확장해서 50개로 늘려보기로 했다.
천년고찰을 찾아 팔도유람을 다니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는 절을 찾아다닐 때면, 108배가 유난히 힘들 때면, 단체로 사찰 순례를 온 어르신들이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것을 볼 때면 이렇게 건강할 때 이토록 멋진 곳을 다닐 수 있음에 절로 감사하게 된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천년고찰들은 대부분 차가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산중이다 보니 오르막에 비포장도로 거나 가파르고 거친 계단을 올라야 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아이에게 노는 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두 다리 멀쩡할 때 건강할 때 다녀야 한다고 세상 다 산 노인처럼 종종 말한다. 늙으면 놀고 싶어도 못 논다고. 오죽하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로 시작하는 그런 노래도 있다고 했더니 아이가 그런 노래가 다 있냐며 웃는다. 이 노래를 만든 분은 정말 현자다. 굉장한 인생의 진리를 이렇게 흥겨운 가사 몇 줄로 표현하다니.
젊어서는 돈 버느라 놀 시간이 없고, 늙어서는 시간이 많아도 돈이 없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놀러 다닐 수가 없다고들 말한다. 돈을 벌어 돈이 많으면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고, 돈을 안 벌어 시간이 많으면 돈을 안 버니 돈이 없어 마음 놓고 놀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지만 그래도 젊어서 놀아야 더 재밌고 덜 억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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