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 108배가 있을 거라고는.
간혹 여행을 가면 주변 절을 둘러보곤 하는데 법당 안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절에 오면 관광안내판이나 읽으면서, '음, 이 절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졌나 보구먼'이라거나 '이건 국보로군' 하고 생각하거나, 수업 시간에 배웠거나 어디 책에서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여기 어디 보물이 있다는데', 아니면 '오, 학교 다닐 때 시험 문제에 나왔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108배도 난생처음이었다. 마곡사에 올 때만 해도 108배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기도빨'이 좋다는 마곡사였지만 내가 기도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마곡사에 가자고 내가 꼬드긴 것 맞지만, 온 우주의 기운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고, 나는 그저 영험하다는 절이 진짜 그런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기도라는 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거나 눈을 감고 바라는 걸 속으로 비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문턱이 그리 높은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갖춰야 하는 나름의 형식이 있다면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외는 주기도문 정도. 그도 아니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는 모양새를 갖추는 정도라 생각했기에 기도라는 종교적 의식을 쉽게 생각했다.
해설사님이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마곡사에 와서 108배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 순간 아이의 눈빛이 빛났다. 그 순간 아이의 뇌리에 '108'이라는 숫자가 강렬하게 각인되었던가 보다. 간절함의 상징이 108배가 되는 순간이었다.
108배가 무엇인지는 아이도 알고 있었다. 막연하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알고 있었을 거다. 숫자를 108번 세야 하니까. 고개를 숙였다 드는 게 아니라 몸을 바닥까지 굽혀 절을 하고 일어나기를 108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얼마나 힘들지는 몰랐을 거다.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마곡사 대웅보전에 들어갈 때도 108배를 꼭 다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108배는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준비도 없었기에. 그래서 아이와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합의했다. 하다가 안 되겠으면 포기하고 나오기로. '하면 된다'말고 '되면 한다'로. 아무리 영험해도 내 관절은 소중하니까.
그런데 절을 하며 생각했다.
어라? 이게 되네? 되면 해야지 뭐.
열 번쯤 절을 했을 때 언제 서른 배쯤 하나 생각했다. 30배쯤 했을 땐 언제 절반을 하나 생각했다. 절반을 넘겼을 땐 언제 108배를 다하나 생각했다. 70배를 넘겼을 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100배를 넘기고 있었다. 정말 못 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하고 보니 하게 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다 보니 아이도 나도 108배를 해내고 말았다. 절대 못할 것 같았는데.
아이가 108배를 못 채울 줄 알았다. 만 9살이니까. 단순하고 반복적인 데다 힘든 일은 하기 쉽지 않겠다 했다. 그래서 절반도 못 하고 포기할 줄 알았다. 안 되겠다며 그만 가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려고 했다.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빨리, 나보다 더 먼저 108배를 끝까지 마쳤다.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 아이가 어릴 때 등산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집에서 가까운 산에 간 적이 있었다. 입구에서 산 꼭대기와 길게 이어진 등산로를 번갈아 보더니 바로 뒤돌아 집에 가자고 했다. 아이는 몸을 움직이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섣불리 새로운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도 빠르다. 그런 아이가 108배를 해내다니.
"할만하던데?"
아이에게 어른도 하기 힘든 108배를 해내다니 굉장하다 했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말하는 아이 얼굴에 뿌듯함이 번졌다. 아마도 아이는 그 순간 "작은 성공의 경험"의 마법을 경험했던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을 해보는 도전, 시작한 일을 끝맺는 끈기,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비는 소원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자신감이라는 씨앗을 싹 틔우고 있었다.
난생처음 108배를 하고 절을 내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한껏 솟은 어깨에, 위풍당당한 걸음걸이. 후들거렸던 내 두 다리에도 힘이 샘솟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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