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발행할 결심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by ordinaryclip


글을 쓰기 전에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이 재밌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데 네 이야기가 포함되어도 되느냐고. 너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에 있어 내 ‘환장의 짝꿍’이니 쓰다 보면 아무래도 네가 등장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 같다고.


곰곰 생각하던 아이는 본인의 이름이 나오거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쓰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에게 예명이나 별칭이 따로 있으면 좋으련만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 아이 이름의 앞 글자를 딴 알파벳 머리글자를 따서 필요시 ‘엠제이’로 쓰기로 했다. 필요한 자리에서 영어 이름으로 쓰기도 해서 급조한 이름은 아닌 셈이다.




평소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해 아이의 초상권과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내가 나를 드러냈을 때 불러올 파장에 대해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면, 득 보다 실이 클 것 같아 썩 내키지 않는다.


IT 기업에서 이용자의 유입을 높일 궁리를 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서비스들이 가져올 '명'보다는 '암'에 집중하는 사회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꽤 많은 날을 주저했다.


그래서 우리의 경험을 글로 써보려 생각했을 때 고민이 많았다. 브런치가 분명 SNS와는 다른 성격의 플랫폼이지만 어찌 되었든 ‘발행’이라는 행위는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서. 이 지면을 빌려 브런치에 글을 쓰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이와 함께한 여정을 글로 남기려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기억을 위한 방편으로 기록이 필요했다. 나는 잘 잊는다. 하다못해 어제 점심으로 먹었던 메뉴가 뭔지 얘기해 보라고 하면 눈알을 굴리며 한참 생각해야 할 판이다. 타고나기를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영업직 같은 건 절대 할 수 없을 핸디캡을 지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생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들은 굉장히 집요하고 섬세하게 기억한다. 원초적 본능 같은 거랄까. 비루한 기억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관심을 가진 것 외에는 잊는다. 저절로 잊히는 쪽에 가깝다. 언젠가 내가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날이 오면 이 기록이 꽤나 유용하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이렇게나마 기록으로 남아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아이에게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외동이라 부모인 우리 말고는 과거의 어느 날을 전해줄 누군가가 없다. 자신이 기억하는 수밖에.


그래서 틈나는 대로 기록해 둔다. 나도 곧잘 잊으니까. 가끔 아이 사진을 찍는데 이제 제법 자란 아이는 왜 자꾸 찍느냐 묻는다. 그때마다 이렇게 찍어놔야 나중에 네가 과거가 된 오늘을 꺼내 볼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 준다. 이 기록은 그런 의미에서의 또 하나의 프로젝트다.




마지막으로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도전이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브런치에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 평소 습성대로 벤치마킹을 위한 조사부터 시작했다. 논문으로 치면 선행 연구나 기존 문헌 검토쯤 되겠다. 브런치 앱을 깔고 글을 탐독하며 작가의 프로필 대문에 붙은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코너를 보고 생각했다. 과연 내 글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죽 나열해 봤다. 마음의 수행이 필요한 지친 직장인, 아이와 같이 할 활동을 찾는 부모님, 작은 성공의 경험이 필요한 분, 뜬금없는 도전을 즐겨하시는 분, 천년고찰 탐방에 관심 있는 분, 불교는 잘 모르지만 요즘 ‘힙’하다는 불교문화에 관심 있는 분? 정도가 떠올랐다.


물론 그냥 남들은 어떻게 사나 심심풀이로 잡문 읽기를 취미로 하는 분도 좋겠다. 그 누가 되었든 생활의 발견, 작은 위로, 사소한 재미를 드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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