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공주 마곡사] 어라? 이게 되네?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첫번째 108배]

by ordinaryclip
2026. 1. 31. @마곡사 [첫번째 108배]


마곡사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평탄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에 접어들자, 길이 굽이굽이 휘어져 신경 써 운전해야 했다. 중간중간 마을들이 보였는데 버스는 한 대도 만나지 못했다. 인적도 드물었다. 마곡사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더 좁아지고 가팔라졌다.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달리며 낯선 시골의 겨울 풍경을 눈으로 훑는다. 한적하고 황량하면서도 정겹고 따뜻하다. 창문을 여니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요맘때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에게 이게 시골에서만 맡을 수 있는 겨울 냄새라 일러주고는 창문을 끝까지 열고 얼굴을 들이밀어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아이가 나를 따라 제 자리에 있는 창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한다. “음~ 겨울 냄새”





마곡사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해설 프로그램 시간이었다. 인상 좋은 해설사님이 아이에게 어떤 이유로 마곡사에 들렀냐고 물었다. 아이는 마곡사가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들어 절을 하러 왔다 수줍게 말했다. 해설사님이 웃으며 절하기 좋은 장소들을 알려줄 테니 골라보라 한다.


마곡사는 경내에 작은 천이 흐르고 천 주변으로 전각이 19개, 암자가 12개가 있는 큰 절이라고 한다. 그중 ’ 영산전‘이라는 영험하기로 소문이 났단다. 풍수지리상 왕이 나올 곳이라 하여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와 대통령이 된 이들이 기도하러 오거나, 하루 묵어갔다고 한다. 큰 시험을 앞둔 이들도 이곳에 와서 기도한다고 했다.


해설사님은 아이에게 이곳도 절하기 좋은 곳으로 괜찮은 선택지가 될 거라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간절한 사람들이라 대부분 108배를 한다 했다. 유심히 듣던 아이가 절할 곳을 정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신라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곡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십승지지'라 한다. '십승지지'란 숨기 좋고, 자급자족이 가능해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숨으러 많이 오는 곳이란다. 그래서 과거 김구 선생과 김시습 같은 분들이 마곡사에 숨어 지낸 적이 있다 했다. 오면서 차가 없으면 닿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왜 길이 험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곡사에는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대광보전 지붕 위 기와 중간에 자세히 보면 청기와가 하나가 놓여 있다. 나중에 죽고 나면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이 청기와를 봤는지 묻는데 그것을 본 이는 극락에 간다는 설이 있단다. 유심히 보니 정말 중간에 있는 기와만 눈에 띄는 청색이다. 해설을 안 들었으면 그곳에 혼자 반짝이는 청기와가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또 하나는 대웅보전에 관한 것으로 대웅보전에는 싸리나무 기둥 4개가 있는데,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라고 물어본단다. 많이 돌았으면 극락에 쉽게 가고 한 번도 안 돌았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여 온 사람들이 모두 기둥을 돌아서 반들반들 윤이 난다고 했다.





"다 같이 108배를 하면 어떨까?"

해설 프로그램이 끝나고 아이가 다 같이 절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것도 108배를.


"갑자기? 엄마는 불교가 아닌데..."

108배라니. 남편은 108배를 하면 운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아이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암. 드라이버한테 문제가 생기면 안 되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반박불가의 사유라 결국 꼼짝없이 내가 동행하기로 한다.


아이는 싸리나무 기둥이 있다는 대웅보전에 들어가 108배를 하겠다고 했다. 머뭇거리는 나와 달리 아이는 거침없이 신발을 벗고 대웅보전으로 들어갔다. 쭈뼛거리며 아이를 따라 법당에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저기, 엄마는 불교가 아닌데..."





법당 안에는 스님이 불경을 외고 계셨다. 스님 뒤로 절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은 바닥엔 냉기가 돌아 발이 시렸다. 다들 방석을 깔고 앉았길래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니 구석에 쌓여있는 방석이 눈에 들어왔다. 눈치껏 절 방석을 꺼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절하는 법도 잘 몰라 다른 이의 절하는 모습을 곁눈으로 보며 따라 했다.

아이는 꿋꿋하게 108배를 마쳤다. 처음 해보는 거라 분명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없었다. 절을 하는 아이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108배를 해보는 사람 같지 않은 포스마저 풍겼다. 아이와 달리 나는 뚝딱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중간에 "엄마 몇 번 했어?"라고 물어서 경건하게 집중해야 하는데 웃음이 터질 뻔했다.


80배쯤 했을 때 아이가 먼저 절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고 나만 남았다. 아이의 절하는 속도는 나보다 월등히 빨랐다. 생전 처음 해보는 108배는 생각했던 대로 쉽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급속도로 체력이 방전되는 게 느껴졌다. 시작 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남은 절을 겨우 마쳤다.





108배를 하고 나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정신이 혼미하고 허기가 밀려왔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고 있을 때 아이가 주머니에서 우유맛이 나는 사탕을 꺼내어 건네준다.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니 대웅보전에 있던 한 보살님이 예쁘다고 한 움큼이나 주셨단다. 아이가 절하는 걸 눈여겨보셨던가 보다.


영산전을 지날 때 아이는 또다시 법당에 들어가 열 번의 절을 더 했다. 무엇을 그리 빌었냐고 물으니 아이는 아빠의 일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나오는 길에 기념품가게에 들렀다. 우리의 첫 도전을 기념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서, 또 시주를 대신할 의미로. 아이는 작은 반야심경 책을, 나는 좋은 글귀가 쓰인 차보를 골랐다. 계산은 남편이 했다. 대신 빌어줘서 고맙다고. 우리는 각자의 기념품을 소중하게 들고 나왔다.





0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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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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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발행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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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어쩌다, 천년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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