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공주 갑사] 아니 또 108배를 하겠다고?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두 번째 108배]

by ordinaryclip
2026. 2. 1. @갑사 [두번째 108배]



밤사이 공주에 눈이 내렸다. 창문을 열어보니 많이 내린 건 아니지만 도로에 쌓일 정도로 눈이 왔다. 전날마곡사에 갔던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주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어제 마곡사에서 나와 무령왕릉을 둘러보곤 배부르게 저녁을 먹은 뒤 공산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들렀다. 해가 지니 공산성 주변으로 은은하게 조명이 비춰서 운치가 있었다. 아이는 이곳에 와보고 싶어 했다. 작년에 공주에 출장 왔다가 이곳에서 사간 제과 명장의 밤파이를 아이가 맛있게 먹었다. 밤파이에 반한 아이에게 언젠가 같이 와보자 했는데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됐다.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면서 어떻게 할지 얘기했다. 남편은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눈치였다. 밖에서 자면 불편하다고. 아이도 당연히 동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여기서 하루 자도 괜찮겠다고 얘기했다. 국립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 5층석탑도 보고 싶다 했다. 웬일로 외박에 호의적이다. 아이에게 좀처럼 없는 일이다. 처음 와보는 공주가 마음에 들었던가 보다. 급하게 숙박앱을 검색해 근처 호텔을 즉흥적으로 예약했다.





일어났는데 몸 여기저기가 뻐근했다. 마곡사에서 팔자에도 없던 108배를 하느라 안 쓰던 근육들이 놀랐다보다. 잠들기 전 내일 못 일어날 수도 있겠다 했는데 다행히 앓아누울 정도는 아니었다. 잠에서 깬 아이에게 괜찮은지 물어보니 다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괜찮단다.


호텔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마침 산성시장 장날이라, 가볍게 시장을 둘러보고 부여로 향했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최근 백제금동대향로만을 위한 전시관이 개관했다. 금동대향로는 2층 어두운 동굴 같은 방 한가운데 위아래로 핀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는데, 명암이 대비되며 압도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이도 나도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해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부여박물관을 관람한 뒤 정림사지를 보러 갔다. 절터만 남은 빈 공간에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는 5층 석탑이 홀로 서 있었다.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삼국사기에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구절로 표현되는데, 단정한 정림사지 5층석탑에 딱 어울리는 문장이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룡산에 있는 갑사에 들렀다. 마곡사의 영험함을 얘기하면서 예로부터 계룡산이 기운이 좋아 도 닦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 계룡산도 마곡사만큼 영험한 것 같으니 간 김에 계룡산도 들려보자며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가보자고 해서 차를 돌렸다. 실제 계룡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으로 생각했을 만큼 풍수지리상 길한 지역으로 여겨졌단다. 그래서 여러 종교인들이 찾아드는데 한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로 갑자기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명당으로 이름난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계룡산에는 사찰이 많다. 그중에서도 천년이 넘은 절로는 갑사, 동학사, 신원사가 있는데 부여에서 가기 좋은 갑사를 가기로 했다. 갑사는 마곡사의 말사로 420년 백제 구이신왕 때 계룡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가 679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갑사로 바꿨다 한다.


갑사로 가는 길은 마곡사로 가는 길처럼 길이 구불거리거나 험하지는 않았다. 주차장 내려 갑사로 올라가는 입구에 산채비빔밥 식당이 즐비했는데 식사 시간이 지나서인지, 겨울이어서인지 손님이 없었다. 언젠가 와본 적이 있던 것 같은 풍경 같아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제 왔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봐도 도무지 생각나지는 않는다.





주차장에서 경내까지는 오르막길이라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숨이 찬다. 헉헉대느라 나는 말할 기운도 없는데 아이는 옆에서 계속 재잘재잘 말을 쏟아낸다. 말하며 걷기 힘들지 않으냐 물으니 괜찮단다. 되려 말을 해야 기운이 난단다. 아이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 이내 지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추갑사라고 갑사는 가을 단풍철엔 풍경이 멋지다던데 겨울이라 황량하다.


어느덧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섰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각들을 구경하던 아이가 대웅전을 찾아낸다. 현판에 쓰인 글자를 읽었던가 보다. 어려서 열심히 본 마법천자문 덕분인지 아이는 나보다 한자를 잘 읽는다. 마법천자문 만세.


"아니 또 108배를 하겠다고?"


아이는 또 대웅전에서 절을 하자고 했다. 마곡사에서처럼 또 108배를 해보겠단다. 남편은 오늘도 운전을 하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며 꽁무니를 뺀다. 아이가 그럼 엄마랑 같이 해야겠다 한다. 힘들지 않냐니까 아빠가 하는 일이 잘 되게 소원을 빌어야 한단다. 어제 마곡사에서 108배를 해보니 열심히 하면 왠지 이루어질 것 같단다. 엄마가 같이하면 힘이 들어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면서.





그리하여 전날 마곡사에 이어 갑사에서도 108배를 하게 됐다. 대웅전에 들어가 방석이 어디 있는지 눈으로 잽싸게 스캔을 한다. 한 번 해봤다고 눈치가 생겼나 보다. 구석에 있는 방석을 들고 와 자리를 잡고 합장을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는 또 거침없이 절을 시작한다.


하나, 둘 숫자를 세며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마곡사 108배의 여파로 허리가 결리고 허벅지 근육이 땅긴다. 어제 마곡사에서는 처음 해보는 거라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무모하게 도전했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알고 하려니 한숨부터 났다. 모르고 하는 것과 알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역시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인가.


어제와 같은 소원을 빌었다. 절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살짝 떴을 때 부처님이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 드디어 정신줄을 놨구나.





전날과 마찬가지로 108배를 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대웅전을 나온다. 아이가 나를 기다렸다 같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에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108배를 하는 동안 땀이 났나 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식어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대웅전에 들어가기 전엔 춥게 느껴졌었는데 나올 땐 손발에 온기가 돌았다.


"힘들긴 한데, 개운해"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아이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아이가 말했다. 어쩌면 108배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칭찬에 아이는 해보니 오늘도 할만한 것 같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한다. 드디어 108배라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것 같다고 아이를 치켜세웠다. 엄마는 어제보다 더 힘들어 겨우 했다고 하니, 힘내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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