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아데스 Mar 14. 2023

파란색의 위로

일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색깔은? 정답은 파란색이다. 나 역시 하늘을 좋아하면서 이 색에 끌리기 시작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 때부터 파란색이면 무조건 좋았다.

중학교 시절, 영선이도 파란색을 사랑했다. 그 친구는 목소리가 예뻐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합창단 일원으로 활동했다. 둘은 한동안 친하게 지내며 순수한 우정을 나눴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영선이가 만년필로 필기하고 있었다. 내심 놀랐다. 검정, 빨강, 파랑 세 가지 색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색 잉크가 아닌가. 해맑은 미소로 친구는 ‘이거 스카이 블루야’라며 잉크병을 가리켰다. 그 이후 잉크 일부를 나누어 가졌지만 무척 부러웠다. 1년 뒤 영선이는 서울로 전학 가고 우리의 추억은 하늘색 잉크병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빛의 삼원색 RGB는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을 뜻한다. 기본 파란색의 8비트 RGB 10진수 색상표기는 (0,0,255)이다. 다시 말하면 RED=0, GREEN=0, 그리고 BLUE=255를 뜻한다. 여기에 붉은색을 조금씩 더하면 보라색을 거쳐 RED=255, GREEN=0, BLUE=255의 자홍색이 된다. 8비트 RGB의 경우, 각각 0에서 255까지 총 천 육백만 개 이상의 색을 표현할 수 있다.

RGB 색상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자료처리를 위한 프로그래밍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그래프를 색으로 표현하는 것도 힘들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RGB로 색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었고 나아가 그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RGB 숫자를 바꾸어가면서 수많은 종류의 파란색에 도취했다. 그야말로 원 없이 파란색을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란색으로 위로받던 시절도 있었다. 매일의 기분을 다양한 파란색으로 표현했다. 일종의 색깔 일기였다. 그리고 그날의 색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기분이 좋은 날은 파란색에 초록색을 조금씩 추가했다. 또한 울트라마린 블루(18,10,143)나 코발트블루(0,71,171) 뿐 아니라 아줄 블루(0,128,255), 화가 이브 클라인의 International Klein Blue(0,47,167)도 좋았다.

마음이 우울해지면 프러시안 블루(0,52,88)처럼 색이 어두워졌다. 어떤 날은 회색이 강해져 갔다. 이때 알게 된 색이 슬레이트 그레이(112,128,144)이다. 푸른색을 띤 회색인데 처음 접하는 순간 다소 흥분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파란색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 것은 하루를 순전히 색으로 표현한 일기 덕분이었다.

모니터에 나타난 색과 인쇄물 상의 색이 달라 출판사에서 승강이를 벌인 적도 있었고 온라인 주문제품이 화면과 색상이 달라 반품한 경험도 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고 RGB로 만든 색을 CMYK 색상으로 같게 나타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이해한다. 햇빛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같은 사물이라도 색이 달라져 보일 수도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유명한 ‘드레스 색깔 문제’도 일종의 착시 현상인 색의 항상성에 대한 논쟁이었다. 아무튼, 색깔을 판단하거나 색을 대하는 까칠한 나의 태도가 부드러워진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특정 색을 좋아하는 마음은 일종의 본능이니 쉽게 단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를 위한 차가운 파란색의 따뜻한 위로. 오늘 나의 파란색은 RGB(0,102,153)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